‘개울에서 놀다가 그만 급해서/물속에 앉아 쉬를 하고 말았습니다/행여 누가 볼까 두리번두리번/나 혼자 몸을 한 번 떨었습니다/개울물이 팬티 속에 손을 넣어/고추를 살살 씻어 주었습니다.’(나만의 비밀)
어린시절 경험담일까? 어른을 위한 동화책 ‘연어’로 유명한 안도현 시인의 첫 동시집. 머리말에서 “시를 쓰면서 어린이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 것처럼 시인은 마음속 꽁꽁 감춰 둔 동심을 살살 풀어 아이들 마음속으로 슬슬 들어간다. 시를 읽던 아이는 자신이 개울물에서 오줌을 눈 것처럼 몸을 떤다. ‘풋살구, 라는 말을 들으면/풋, 풋, 풋//살구, 살구, 살구’(풋살구)를 읽으면서는 입속에 풋살구가 들어온 듯 침이 고인다.
‘호호호호 호박꽃/호박꽃을 따버리면/애애애애 애호박/애호박이 안 열려/호호호호 호박전/호박전을 못 먹어’(호박꽃)나 ‘쾅쾅쾅쾅 뛰어가면/그렇지, 일곱 살짜리일 거야/콩콩콩콩 뛰어가면/그렇지/네 살짜리일 거야’(위층 아기) 같은 말놀이 동시도 재밌다.
시인은 어느새 아이와 닮은 자연과 하나가 되기도 한다. ‘집으로/뛰는/아이들/아이들보다/먼저/뛰는/소/소보다/앞서/뛰는/빗줄기.’(소나기) 그래서 소나기에 급히 아이들이 소를 몰고 가는데 빗줄기 소 아이들 중 무엇이 먼저 가는지 알 수 없다.
이 밖에 벚나무 개구리 뻐꾸기 참새 붕어 풀벌레 고양이 눈사람 억새 가을밤 안개 다리 김치 물팔매같이 보잘것없는 존재들이 시인의 동심에 물들어 보석같이 빛난다. 시집은 ‘위층 아기’ ‘야옹, 하고 소리를 내봐’ ‘하늘 위의 창문’ ‘우리 마을 공터에 놀러 온 귀신 고래’ 등 4부로 나뉘어 있다. 시마다 동화책 삽화가 정문주 씨의 고운 그림들을 곁들였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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