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변시지 위작 108점 불법유통

  • 입력 2007년 4월 3일 15시 11분


3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압수된 위작들을 경찰관계자가 살펴보고 있다(上).  좌측이 변시지의 진품, 오른쪽은 위작(下). 안철민기자
3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압수된 위작들을 경찰관계자가 살펴보고 있다(上). 좌측이 변시지의 진품, 오른쪽은 위작(下). 안철민기자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 등 국내 유명 화가들의 그림 100여 점을 전문가들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정밀하게 위조한 미술품 전문 위조 조직원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3일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위조해 팔아온 혐의(서명위조)로 판매책인 복모(51) 씨를 구속하고 복 씨의 친동생(49)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경찰은 위조 작품을 그린 무명 화가 노모(64) 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복 씨는 10여 년 전 인사동에서 화랑을 직접 운영해 중간 판매상과 화가들 사이에 이름이 알려진 인물. 그는 "유명 화가의 그림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많으니 유명 작가의 그림을 위조해 돈을 벌자"는 동생의 제안에 노 씨 등 무명 화가 4명을 고용해 위작품을 만들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경기 파주 안양 등에 '공장(작업실)'을 마련해 유명 화가 24명의 그림 90점을 위조했고 천경자, 박수근 등의 위작 38점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중 108점을 화랑과 수집가들에게 팔아 이들이 챙긴 부당 이익은 약 1억8000만 원. 경찰은 이 위작품들의 진품 시가는 총 1011억 원 정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위조책으로 고용된 4명의 무명 화가들은 각자 자신이 강한 분야를 중심으로 역할을 나눠 위작품을 그렸다.

극장 간판 그림을 40여 년간 그린 노 씨는 파주 작업실에서 변시지와 이만익의 인물화를, 박모(47) 씨 등 3명은 안양 작업실에서 이중섭의 정물화를 주로 그렸다.

이들은 전시회 팸플릿이나 도록에 실린 그림을 실제 크기로 확대 컬러 복사한 뒤 그 위에 얇은 습자지를 대 밑그림을 베끼는 방식으로 실제 작품 같은 그림을 그렸다. 지난해 12월에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M화랑에서 변시지의 '해녀', 이만익의 '가족' 시리즈 중 '달꽃'과 '만남' 진품 3점을 직접 가져와 베끼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서양화가 이만익 씨는 자신의 위작을 보고 "잘 그렸네. 미대 정도는 나온 실력이지만 내가 쓰는 외국산 물감으로 그려지지 않아 위작인 게 구분이 된다"고 말했다.

이들이 다른 경로를 통해 구입한 변시지의 '조랑말과 소년' 위작품도 한국미술품감정위원회에서 진품으로 감정됐으나 나중에 작가 본인이 "이 그림은 내가 그린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또 경찰이 이들로부터 압수한 천경자 그림의 위작품 한 점도 전문가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진품과 비슷했다.

이세형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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