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답사기 30선]<1>문명의 연행길을 가다

  • 입력 2007년 4월 4일 03시 00분


《의무려산(醫巫閭山)은 접경이었다…홍대용은 기존의 어떤 질서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곳, 그러면서도 새로운 질서를 잉태하는 곳으로 의무려산을 설정했던 것이다. 의무려산은 두 세계가 만나는, 인습과 관례를 전도시키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접경이었다.》

연행길에서 새 세계를 만나다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은 최고 지리학자다운 탁월한 안목을 보여 주는 말을 남겼다.

“길에는 주인이 없다. 그 위를 가는 사람이 주인일 뿐이다.”

이 말을 그대로 실천한 이 책의 저자들은 과거 조선과 중국을 잇는 연행(燕行)길에 담겨 있는 숱한 역사와 문학의 자취를 찾아 나섰다.

연행이란 무엇인가. 연경행(燕京行)의 줄임말로서, 연경은 원·명·청의 수도였던 베이징(北京)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 베이징을 다녀오는 사절단을 ‘연행사’, 이들이 오간 길을 ‘연행로’, 그들이 남긴 기록을 ‘연행록’이라 했다. 조선 초에는 천자를 보러 가는 것을 ‘조천(朝天)’이라 했지만, 오랑캐 청나라에 이 말을 쓰기에는 소중화(小中華)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아 그냥 ‘연행’이라 했다.

그런데 그 연행길을 오가며 조선의 젊은 지식인들이 소중화의 허위의식을 내동댕이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이 나아갈 길을 찾았던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당시 연행은 넓은 세계로 통하는 유일한 출구였다. 김창업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등 조선의 뜻있는 젊은 지식인들은 앞을 다투어 연행길에 나섰고 그곳에서 자신들의 안목을 넓히고 새로운 세계 질서와 호흡하고자 했다.

게다가 이들은 오가는 연행길조차 자신들의 무대로 만들었다. 지나치는 산수(山水)가 예사롭지 않고, 또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별이 이어지고, 감회 어린 역사의 현장들을 만나니 이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숱한 문장과 시(詩)들이 곳곳에 남겨졌다. 이런 명문장이, 탄생한 바로 그 현장에서 그대로 되살아나고 있으니, 이 책은 일견 역사 현장을 찾는 답사기이고 일견 문학과 사상의 기행이기도 하다.

사실 수백 년 동안 많은 조선 지식인이 연행을 하고 수백 권의 연행록을 남겼다. 이렇게 오랫동안 하나의 길을 그 숱한 사람이 지나가고, 또 이렇게 풍부한 기행문학을 남긴 예는 세계사적으로도 거의 드문 일이다. 이런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통해 오래 격절(隔絶)했던 이국땅을 우리 시각으로 되새겨 보는 기행이 이 책이 갖는 미덕이다.

또한 요동 땅에서 마주친 고구려의 유적과 역사를 환기하는 연행사의 발길도, 고구려사를 둘러싼 역사 분쟁이 한창인 요즘에는 예상치 않은 보너스로 읽힌다.

이 책이 단순한 기행문이 아닌 이유는, 그 길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역사를 한 걸음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과거의 복원이라면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 저자들은 ‘신연행록’을 짓는 마음으로 연행길에 대한 진한 애정과 깊은 학문적 조사와 또렷한 문제의식을 담아냈다.

이 책에서는 압록강 건너 단둥(丹東)에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까지만 탐방하였다. 연행길의 절반만 돌아본 셈이니, 나머지 베이징과 열하(熱河·지금의 청더·承德)까지의 연행길이 기다려진다.

임기환 서울교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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