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62회 식목일… ‘소나무계’를 아시나요

  • 입력 2007년 4월 6일 02시 50분


4일 오후 충남 계룡시 엄사면 향한리 향적산 무상사 뒤편 개발 현장. 향한리 송계 재정 담당인 류담선 씨가 산림 훼손을 막은 송계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계룡=지명훈  기자
4일 오후 충남 계룡시 엄사면 향한리 향적산 무상사 뒤편 개발 현장. 향한리 송계 재정 담당인 류담선 씨가 산림 훼손을 막은 송계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계룡=지명훈 기자
‘산신제 지내는 향적산 털끝 하나 건드리지 마라-향한리 송계원 일동.’

4일 오후 3시경 충남 계룡시 엄사면 향한리 향적산 기슭. 외국인 스님의 수행처인 무상사 주변에 이르니 산림 훼손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나붙어 있다.

특이한 것은 현수막을 내건 주체가 이름도 생소한 ‘송계원(松契員)’이라는 점.

50여 m를 더 올라가 무상사 뒤편에 도착해 산림이 여기저기 파헤쳐진 현장이 나타나자 향한리 송계의 재무 담당인 류담선(46) 씨는 “시민단체의 공동 대처 제의도 마다하고 송계가 주체가 돼 싸움을 승리로 이끌고 있다. 이제 원상 복구만이 남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 산림 지킴이 소나무계

송계는 조선시대 후기인 18세기 초 전국의 지역주민이 마을별로 주변의 산림을 지속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규정을 정해 노동력과 기금을 갹출하던 계모임. 계원들은 규약에 따라 적정한 벌채량과 산림조성량을 매년 할당해 산림 자원을 고갈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산림을 이용했다.

과거에는 원유만큼이나 중요했던 땔감과 주택의 재료인 목재, 농사에 필요한 거름(비료)을 산림에서 지속적으로 채취하기 위해 ‘마을의 가장 중요한 공동자산’인 산림을 철저히 보호한 것.

계원들은 또 이 조직을 토대로 각종 민속을 전승하며 공동체문화를 형성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경제발전으로 연료와 비료 등의 수급원이 달라지면서 급격히 쇠퇴해 현재 활동 중인 송계는 전국에서 향한리가 유일하다.

최근 ‘금산(충남)의 송계’를 저술한 민속학자 강성복 씨는 “전국적으로 조사 활동을 벌였지만 향한리만큼 활발하게 활동하는 송계는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 도쿄(東京)대 쓰쓰이 미치오(筒井迪夫) 명예교수는 조선시대 기층민들에 의해 운영됐던 송계가 다음 세기에도 인류가 채택해야 할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과 유사하다고 평가했다”며 “송계는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그 의미는 점차 더욱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 계원 225명… 기금만 3억여 원

산림 관리를 위한 협동조직인 향한리 송계와 무상사 뒤편 시유림 3000여 평을 불하받아 개발하려는 A 씨와의 싸움은 지난해 4월 시작됐다. 이 마을 송계는 개발 현장 주변 44만 평의 산림을 소유하고 있다.

송계는 개발에 맞서 공사 현장에서 실력 저지했고 A 씨가 계룡시의 불허가 처분에 맞서 행정소송을 제기하자 현장 답사를 나온 판사를 상대로 설득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또 청년회와 노인회 등을 소집해 개발업자의 마을 주민 회유 작업을 무산시켰다.

결국 A 씨는 지난해 9월 행정소송에서 패했다.

향한리 송계도 1995년경 해체될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활동이 줄어든 데다 산림에 대한 세금만 늘어나자 산을 팔아 버리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마을을 지탱해 온 근간인만큼 활성화해야 한다며 계원을 70명에서 225명으로 확충하고 입회비를 받아 3억여 원의 기금을 마련했다. 여기에다 방송사 중계안테나 용지 대여료와 암자(10여 개)의 월세를 받아 활동자금으로 썼다.

산림 보호는 송계의 근본 임무. 각 암자의 직원으로 일하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개발업자나 암자의 산림훼손, 사냥꾼의 동물 남획 등에 대한 정보를 받아 대처한다. 종종 마을 청년회를 주축으로 사냥용 올가미 수거 운동도 벌인다.

계룡=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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