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출판사의 주주들은 시인 17명과 시 평론가 3명. 보기 드문 ‘시인들의 주주총회’가 열리는 셈이다. 출판이 문화운동이었던 1970, 80년대에야 문인들의 주주 참여가 낯선 일이 아니었지만 1990년대 이후 생긴 출판사들은 대부분 오너 체제다. 천년의 시작도 2002년 문을 열었을 때는 개인 회사였다. 보수적인 문단에서 신생, 그것도 ‘돈 안 되는’ 시 전문 출판사가 자리 잡기란 쉽지 않은 일. 출판사는 신인들의 첫 시집을 적극적으로 펴내고 계간지 ‘시작(詩作)’을 꽤 알차게 꾸려 호감을 쌓아 갔지만 2005년 초 심각한 경영 위기에 처했다.
편집주간 이재무 시인이 편집위원들과 머리를 맞댄 끝에 내린 결정은 ‘주식회사로의 전환’. 그 자리에서 이 씨는 시인들에게 주주로 참여해 달라고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이덕규 이은봉 김왕노 김화순 시인 등이 잇달아 참여 의사를 밝혔다. 목표한 20명이 모이는 데 걸린 시간은 3시간. 1인당 1000만 원씩 내기로 하고 3개월의 준비 기간을 두었다. “반신반의했는데 정확하게 3개월 뒤에 돈이 다 들어오더라”고 이 씨는 돌아본다. 올해 초 법인 인가가 나면서 법적으로도 완전한 주식회사가 됐고 첫 주총을 열게 됐다.
현실감각 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 시인이라는데 주주로 참여한 시인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출판사가 살아남기 위해선 시집뿐 아니라 ‘돈 되는’ 책도 내야 한다고 나섰다. 몇 권의 산문집이 나왔고 다음 달 ‘이건희 평전’을 출간할 참이라고 한다. 돈 안 되는 시집을 내기 위해선 자본주의 구조에서 생존 방식을 터득해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 때문이다. ‘순결한’ 시 출판을 계속하기 위해 분투하는 주주 시인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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