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나만의 행복’에 빠진다… 전시공연장 문화강좌

  • 입력 2007년 4월 6일 03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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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접하면서 느낀 지적 욕구, 그것을 놓치지 않은 사람들은 다시 공연장과 전시장을 찾는다. 작가와 소통을 하고 싶어서다. 성남아트센터의 음악기행 강좌(위 사진), 예술의 전당 미술아카데미 전시회(아래 왼쪽), 예술의 전당 동양화 강좌. 사진 제공 예술의 전당
문화를 접하면서 느낀 지적 욕구, 그것을 놓치지 않은 사람들은 다시 공연장과 전시장을 찾는다. 작가와 소통을 하고 싶어서다. 성남아트센터의 음악기행 강좌(위 사진), 예술의 전당 미술아카데미 전시회(아래 왼쪽), 예술의 전당 동양화 강좌. 사진 제공 예술의 전당
《청소부는 자신이 매일 윤이 나도록 닦는 표지판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한 꼬마 때문에 거리 이름 표지판에 써 있는 작가와 음악가를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지요. 뒤늦은 호기심은 그의 몸을 달굽니다. 퇴근 후 청소부는 공연장으로, CD가게로, 서점으로 달려가 그들의 정신적 소산을 찾았습니다. 낮에 자신이 닦아 주었던 작가와 음악가를 ‘친구’로 삼았지요.

사다리 위에서 표지판을 닦으면서 그 음악가의 음악을 흥얼거렸고, 작가의 작품도 읊조릴 수 있게 됐습니다. 자신의 감상을 담아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그의 ‘혼잣말 강연’에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독일 작가 모니카 페트의 동화 ‘행복한 청소부’ 이야기입니다. 청소부의 얘기를 듣기 위해 발걸음을 멈춘 행인들처럼 지금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문화강좌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문화에 대한 욕구는 모든 사람에게 잠재해 있습니다. 일이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실행을 미루고 있을 뿐. 하지만 너무 미루지는 마세요. 어쩌면 그 멋진 ‘문화의 요트’에 영영 올라타지 못할 수 있습니다.》

○ 아! 이 즐거움

유현정(33) 변호사는 매주 토요일 오전 10∼12시를 들뜬 마음으로 맞이한다. ‘깊게 보는 세계의 미술’ 강좌를 들으러 서울 예술의 전당으로 차를 몰고 가는 시간마저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의 순위에 든다.

“이보다 더 감동적일 수는 없다. 문화와 관습을 읽고 당시의 작가 마음을 따라가 보는 것은 흥분을 일으킨다. 미술을 배운다지만 실은 인간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강좌 덕택에 세상과 인간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미술 강연은 의료사고 전문변호사인 그가 분쟁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런 지적 즐거움 때문에 토요일에도 사무실에 출근해야 하는 그는 예술의 전당부터 먼저 찾는다.

가치를 아는 사람은 그 가치를 누린다. 고영애(53) 씨는 10년 넘게 토탈미술관 아카데미에 등록하고 있다. 현재 그가 듣는 강좌는 ‘명품 건축과 순례’ ‘연주와 강의가 함께 있는 음악’ 2가지.

“아는 만큼 볼 수 있는 것이 많아 너무 좋다. 건축가의 사유를 공유했다고 느낀 순간에는 희열감까지 생긴다.”

고 씨는 “문화 강좌가 내 인생 중반 기쁨의 전부”라고도 했다. 이 기쁨을 친구 8명을 끌어들여 함께 나누고 있다. 지금은 27세와 24세의 청년이 된 두 아들에게 청소년 시절부터 미술과 음악에 친숙하도록 만들어 준 것도 고 씨다. 우연히 듣게 된 건축과 미술 강좌의 매력에 빠져 늦은 나이에 홍익대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문화가 주는 행복감은 ‘행복한 청소부’의 결말 부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길거리 강연으로 유명해진 청소부는 교수 자리를 제안 받지만 이를 거절한다.

“나는 하루 종일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입니다. 강연을 하는 것도 오로지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랍니다.”

○ 대중의 문화욕구 폭발

매주 수요일 오후 7시면 130여 명이 예술의 전당 ‘문화 사랑방’에 모인다. 오페라를 배우려는 사람들의 행렬이다.

클래식과 오페라 강연으로 유명한 박종호(음반가게 풍월당 주인) 씨는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욕구를 피부로 느낀다. 최근 6개월 사이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말한다.

남성 수강생이 늘어난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오후 3시에 시작하는 낮 강좌는 대부분 여성 몫이지만 저녁 강좌에는 40, 50대의 남성도 많다. 지방에서 먼 걸음을 마다 하지 않고 찾아오는 이도 있다.

“경험적으로 볼 때 남성은 마니아가 될 확률이 더 높다. 클래식 문화가 확산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박 씨)

욕구는 열정을 낳는다. 성남아트센터에서 오페라 강좌를 듣는 김현지(48) 씨는 1주일을 거의 오페라와 함께한다. 오페라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고 공연 실황을 녹화한 DVD를 본다. 1주일에 한 차례의 강의는 문화 욕구 표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관련 서적에 빠져들다 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까지 다시 읽게 된다. 문학으로 넓어진 관심 때문에 지금은 글쓰기 공부를 한다.”

강연이 끝난 후 서점이나 전시관을 찾는 소모임을 별도로 만들어 활동하는 이들도 많다.

○ “부작용없고 경제적인 취미”

왜 이렇게 대중의 욕구가 늘었을까. 잠재돼 있던 문화 욕구가 이제야 빛을 보는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개인의 취향과 욕구가 다양해지면서 사회적으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건들이 제법 갖춰졌다. 예컨대 공연과 전시회가 풍부해졌다. DVD와 홈시어터 시스템의 보급으로 문화체험의 여건이 개선된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박종호 씨는 ‘경제적인 취미론’을 주장한다. “사실 클래식 음악이나 오페라 감상처럼 경제적인 취미도 없다. DVD 한 장이면 전율과 감동을 몇 시간이고 누릴 수 있다.”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그는 “공연에 빠져 있는 3∼4시간은 우리의 정신을 환기시키는 작용을 한다”며 “마약과 술도 비슷한 효과를 내지만 예술은 부작용 없는 약인 셈”이라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1개만 선택해 집중해 보라고 권한다. “예프게니 키신이 연주하는 쇼팽 피아노 곡을 골랐다면 당신의 취향은 키신의 연주곡, 쇼팽 작품, 피아노 연주곡 등 여러 분야로 진화할 수 있다.”

○ 문화 강좌, 점점 세분화

전반적으로 강의 수준이 높아지고 세분화되는 추세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해당 작품을 소개하는 ‘미리 보기’ 강좌까지 생겨났다.

오페라 강좌와 음악 강좌도 시각적인 요소가 중요해지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굳이 음악만 들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DVD를 보면서 듣는 강연은 시각 자료가 없을 때보다 훨씬 흥미롭다.

건축과 미술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다. 세계의 명품 건축이나 유명 현대 미술관을 직접 찾아 감상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체험은 지식을 두뇌에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여행은 또 다른 재미다.

한 강사가 강좌 전체를 맡기보다는 주제별로 여러 강사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특정 주제를 세세하게 나눠 그만큼 깊이 있는 얘기를 듣는 것이 가능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온라인 강좌로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도 있다. 문화·예술 강좌 전문 사이트인 아트앤스터디(www.artnstudy.com)에는 소설가 조정래 씨 등 유명 인사들의 유·무료 강연이 문학, 철학, 문화예술 등으로 분류돼 올라 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고급문화강좌 ‘그 명성 그대로’

보고 느끼고… 아는 만큼 즐겁다

공연장과 전시관이 작품을 감상하는 곳만은 아니다. 각 공연장과 전시관에서는 고급문화 강좌도 운영한다.

◇예술의 전당 (www.sac.or.kr·서울 서초구 서초동)

작년 한 해 동안 89개 강좌가 개설됐다. 1년간 수강생은 5000여 명. 크게는 미술 아카데미와 음악 아카데미, 서예 아카데미로 나뉜다.

일찍 정원이 마감되는 인기 강좌는 ‘박종호의 오페라 강좌’ ‘깊게 보는 세계의 미술’ ‘뿌리째 캐는 한국 미술’ 등이다.

‘깊게 보는…’은 지금까지 그리스, 르네상스, 일본을 주제로 3학기 동안 진행됐고 지금은 중세와 비잔틴 편을 다루고 있다.

‘뿌리째…’과 ‘깊게 보는…’엔 답사 여행 과정도 포함돼 있다. ‘뿌리째…’ 수강생들은 3월 말 서울대 임효재 교수의 안내로 서울 강동구 암사동 신석기 유적지와 강화도 고인돌 유적지를 다녀왔다.

다음 학기에는 ‘깊게 보는 세계의 미술-인도와 힌두편’ ‘서양건축사-바로크와 현대편’ ‘뿌리째 캐는 한국 미술-고대 국가편’이 개설된다.

◇성남아트센터(www.snart.or.kr·경기 성남시 분당구)

오페라 강좌와 클래식 음악 노트, 미술 이론 및 실기, 서양의 문화와 예술 기행, 올드 팝송으로 배우는 영어 등의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음악 감상 강좌는 영상물과 함께 진행된다. 녹화된 공연 장면을 보면서 스토리와 음악가, 지휘자, 작곡자에 관한 해설을 듣는다. 강사가 음악 여행을 통해 체험한 작가의 고향 이야기나 에피소드 등을 들려줘 흥미를 더한다.

직장인들을 위한 재즈 음악 강좌를 저녁 시간대에 개설할 계획이다. 또 성인을 대상으로 한 명사 초청 특강과 청소년 대상의 청소년 음악회도 준비 중이다.

◇토탈미술관 (www.totalmuseum.org·서울 종로구 평창동)

토탈미술관의 강좌 주제는 음악, 미술과 건축, 문학의 세 분야다. 큰 틀은 그대로지만 세부 강좌는 매년 바뀐다. 이 때문에 10년을 넘게 듣는 수강생들도 매번 새로운 공부를 할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강좌는 ‘연주와 강의가 함께 있는 음악’ ‘영미 문학과 영화’ ‘명품 건축과 순례+동시대 예술’ 3가지다. 순서대로 화, 수, 목요일 오전 10∼12시에 강의가 이뤄진다.

새롭게 시도된 ‘연주와…’은 직접 연주를 해 봄으로써 음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강좌다. 무심코 지나쳤던 연주곡을 좀 더 주의깊게 들을 수 있게 됐다고 수강생들은 평가한다.

오래 수강한 사람이 많아 매년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수강생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는 편이다.

◇아르코예술정보관(www.arko.or.kr·예술의 전당 내 한가람디자인미술관 3층)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열리는 고전음악 강좌는 20년 전통을 보유한 대표 프로그램이다.

화요일엔 ‘음악, 연주로 새롭게 태어나다’라는 제목으로 장르별 연주를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목요일의 ‘베토벤 브람스 집중 탐구’ 강좌는 그들의 생애와 음악에 체계적으로 접근한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 열리는 ‘문학, 작가의 목소리로 남다’ 프로그램은 초청된 유명 문인이 직접 고른 작품을 낭독하고 수강생들과 대화하는 강좌다.

예술 감상 인구의 저변을 확대하려는 공익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라 무료 프로그램이 많고 유료라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www.membershipmoca.org·경기 과천시 막계동)

이론 강좌인 ‘미술사’와 ‘건축 특강’이 많이 알려졌다. 베니스 비엔날레 등 유럽에서 개최되는 국제 미술제를 둘러보는 학술기행이 포함돼 있다.

현대미술아카데미 프로그램은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기보다는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둔다. 수채화와 유화, 드로잉, 재료, 발상과 기법, 영상미디어, 판화, 사진 등 현대미술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강좌가 마련돼 있다.

교육 프로그램은 1년 단위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강사보다 수강생이 적을 때도 있지만 폐강하지 않고 배우고자 하는 수강생들의 열의를 채워 준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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