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따뜻해지는 일상만화 4편
# 우주인(이향우·길찾기)
책을 읽지 않는 시대다. 그래도 누구나 읽는 책이 하나 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10, 20대 시절 우주 저편에서 찾아온 꼬마에게 한 번쯤 마음을 뺏긴다.
어린 왕자가 떠난 지구에 또 한 명이 찾아왔다. 우주인. 핑크빛 파마머리를 하고 어느새 다가와 눈망울을 빛낸다. “내 이름은 우주인이야”라며. 하는 일 없는 백수인 주인공은 스스로 우주인이라 믿는다. 밤이면 꿈을 꾸느라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다. 낮에 자려 하지만 방해하는 이가 많다.
중국집 배달원, 도시가스 검침원, 도둑. 그리고 ‘반가운’ 여우도 찾아온다.
작가 이형우는 독특하다. 흉내 낼 수 없는 개성을 표출하면서도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한다. 백수를 포함한 캐릭터들은 삶의 변두리에 서 있지만 외지지 않다. 그늘인데도 온기가 가득하다. 잔잔하게 관조하지만 긍정하는 끄덕임의 미덕을 품었다. 우주인은 1998년 연재돼 이듬해 2도짜리 흑백만화로 발간됐다. 그런데 2권짜리 단행본이 다시 나왔다. 작가가 원고마다 직접 색을 입혀 완전히 ‘새로운’ 우주인을 만들었다. 정성을 들인 만큼 감동도 커졌다. 언제나 곁에 두고픈 진짜 우주인처럼.
# 천재 유교수의 생활(야마시타 가즈미·학산문화사)
Y대 경제학부의 유택 교수는 어느 대학에나 있음 직한 고고한 교수. 언제나 오전 5시 기상, 오후 9시 취침. 좌측통행에 교통법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 흐트러짐이 없는 선비를 닮았다.
꽉 막혀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더 놀랍다. 도둑고양이가 쓰레기를 못 뒤지게 막지만 살짝 꽁치를 내놓는다. 남들은 꺼리는 노숙자 옛 친구와 추억의 팽이놀이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서진 않아도 삶을 회피하지 않는다. 다들 잊고 사는 여유와 인정을 조용히 실천한다.
유 교수의 삶은 얼핏 코미디다. 바르게 사는데 괴짜로 보인다. 사르르 미소가 번졌다가 아차 싶다. 우스꽝스럽지만 실은 소중한 걸 지켜 간다. 우리네 인생은 얼마나 많은 걸 잊고 사는지. 타성에 젖어 ‘그냥’ 살아가진 않는지. 작가는 넌지시 거울을 건네준다.
대개 삶은 평범하다. 가끔은 따분하기도 하다. 그러나 무지개 너머 파랑새는 언제나 곁에 있는 법.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게 진짜 ‘천재’인 것을. 유 교수의 생활은 그래서 평범하지만 특별하다.
# 황혼유성군(히로카네 겐시·서울문화사)
작가는 극사실적인 스토리로 유명하다. 절륜한 성 편력이 껄끄럽긴 해도 만화 ‘시마과장’은 일본 조직사회의 속살을 여실히 보여 줬다. 황혼유성군은 그 조직 속에 살고 있는 인간에 돋보기를 들이댔다. 30∼50대 중년의 인간관계와 심리를 소재로 삼았다.
은행 지점장인 모리모토는 조만간 좌천당할 처지.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혼자 여행길에 오른다. 우연히 만난 미모의 중년 여성 세이코. 근사한 하룻밤을 꿈꿨지만 헛물만 켰다. 아쉽게 돌아왔지만 회사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는데….
언젠가부터 ‘중년’은 이상하게 불륜의 이미지가 겹친다. 드라마도 중년의 외도와 바람에 빠져 산다.
이 만화 역시 불륜을 다뤘다. 한데 추하지 않다. 욕망에 허덕이지 않고 진지하다. 사건은 오히려 인생을 반추하는 계기가 된다.
중년은 샌드위치다. 젊음의 만개도 만년의 해탈도 멀다. 가끔은 무기력하기까지 하다.
황혼유성군은 그 고정관념에 고개를 젓는다. 중년의 일탈이 꼭 벼랑 끝 위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중년 역시 두근대는 심장을 지닌 인간임을 담담하게 보여 준다.
# 카페 알파(아시나노 히토시·학산문화사)
때를 알 수 없는 어느 미래. 예전의 도시는 물에 잠겼다. 인적이 드문 어느 곳에 자리 잡은 ‘카페 알파’. 로봇 알파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작됐다지만 특별한 건 없다. 사건은커녕 손님도 별로 없다. 가끔 찾아오는 주유소 할아버지와 손자, 배달원 로봇이 거의 전부다. 로봇이 주인공인 만화는 대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기 마련. 그러나 알파는 그것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알파의 하루를 보자. 바다를 헤엄치다 콜라병을 보면? 초록빛 색깔이 예쁘니 즐겁다. 하늘에 비행기가 날면? 새를 떠올리곤 미소 짓는다. 한가하고 여유롭다. 파스텔 기운이 가득한 그림체. 읽다가 책을 덮고 살짝 졸아도 작가는 “바로 그거야”라고 말할 것 같다.
알파는 로봇이다. 사라진 현재와 단절됐다. 메트로폴리탄의 쳇바퀴도 알 리가 없다. 덕분에 때 묻지 않은 눈을 가졌다.
주위를 둘러보고 작은 것도 따스하게 관찰한다. 어린 시절 들판만 있어도 온종일 뛰어놀던 추억. 알파는 그 소중함을 말없이 상기시킨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가족과 함께 푸는 네모로직]4월 6일자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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