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피부는 옷차림과 따로 논다. 옷은 점점 화사해지는데 피부는 반대로 칙칙해지는 느낌이다. 온도와 습도가 갑자기 변해 피부가 적응하는 데 애를 먹는다. 요즘은 황사까지 겹쳐 가뜩이나 예민한 피부를 괴롭힌다.
그래서 화장품 업체들은 봄을 성수기로 보고 다양한 기능성 화장품을 선보이고 있다. 익히 알려진 유명 브랜드에서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는 인터넷 브랜드까지 바야흐로 화장품 홍수시대다.
웬만한 국내외 화장품은 모두 써 봤다는 화장품 ‘고수’들이 봄철 화장품 고르는 요령을 소개했다.
(도움말: 화장품 동호회 ‘닥터윤주의 화장품나라’를 운영하는 화장품 칼럼니스트 강윤주 씨, ‘유리거울’ 운영자 이유리 씨, 전 잡지 뷰티 에디터이자 케이블 TV 올리브 네트워크의 ‘겟 잇 뷰티’를 진행하는 피현정 씨)
○ 어디에 투자할까
▽각질 제거=강윤주 씨는 각질 제거를 봄철에 집중해야 할 피부관리 항목으로 꼽았다.
강 씨는 “계절이 바뀌면 동물이 털갈이하듯이 사람 피부도 각질이 일어난다”며 “모공 사이에 낀 각질을 깨끗이 제거해 주면 안색이 맑아 보이는 브라이트닝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각질 관리 제품은 아하(AHA·알파하이드록시산)나 바하(BHA·베타하이드록시산) 등 산 성분이 들어 있어 피부의 묵은 각질을 제거한다.
▽수분 공급=1년 내내 중요하다. 각질을 제거한 후 얼굴에 수분 로션 등을 꾸준히 발라야 촉촉하게 빛나 보인다. 손, 팔꿈치 등 건조한 부위는 시간이 날 때마다 로션을 발라 주는 게 좋다.
피현정 씨는 “겨울철 추위에 시달린 피부가 따뜻한 날씨에 적응할 수 있도록 수분 공급을 충분히 해줘야 한다”며 “대개 피부트러블의 근본 원인은 수분 부족”이라고 말했다.
틈날 때마다 수분스프레이를 뿌려 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자외선 차단제=이유리 씨는 자외선 차단제를 강조했다. 봄에는 일조량이 많을 뿐 아니라 야외활동량도 늘어나 피부가 자외선에 노출되기 쉽다. 자외선은 피부에 백해무익이다. 이 씨는 “자외선 차단제는 기본이고 기초화장품, 수분스프레이, 파운데이션 등도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 것을 택하는 게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오후에 물 티슈로 화장을 닦아낸 후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화장을 다시 하면 햇빛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할 수 있다.
▽화이트닝=강한 자외선은 피부 속에 있는 멜라닌을 피부 표면으로 불러낸다. 멜라닌은 기미 주근깨 등 잡티로 변해 피부가 지저분하게 보이게 한다.
피 씨는 “화이트닝 화장품은 자기 전에 자외선에 손상된 피부를 진정시키고 멜라닌이 피부 속 깊이 뿌리내리지 않도록 도와준다”며 “자외선이 많은 봄과 여름에 특히 유용하다”고 소개했다.
○ 바르면 정말 얼굴이 하얘질까
눈에 띄는 것은 랑콤의 ‘블랑 엑스퍼트 뉴로화이트 X³’. 랑콤은 스트레스로 분비되는 신경물질이 멜라닌 생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에 착안했다. 이 신경물질을 억제하는 ‘뉴로화이트 시스템’ 등을 개발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 키엘, 엔프라니 등도 식물성분을 넣은 미백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다.
바르면 살이 빠진다는 제품도 있다. 이른바 슬리밍 제품으로 일찌감치 여름에 대비하려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화장품 인터넷쇼핑몰 스킨알엑스는 물살과 알통을 구분해 바르면 살이 빠진다는 슬리밍 제품(리포존)까지 팔고 있다. 팔 살과 종아리 살 전용 제품도 나왔다.
문제는 효과. 바르면 정말 얼굴이 하얘지고 살이 쏙 빠지는 걸까.
강 씨는 “화장품은 의약품이 아니다”면서 “미백은 얼굴 피부 톤을 전체적으로 균등하게 하고 화사하게 해준다는 것이지 색깔을 하얗게 만드는 게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이 씨는 “매 시간 슬리밍 제품을 복부에 발라 살이 빠진 사람을 봤다”면서도 “체질에 따라 다르고, 운동과 식이요법을 곁들였는지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화장품은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가짜 약을 진짜 약이라고 믿으면 효력이 있는 것)도 있는 것 같다”며 “자기만족과 함께 ‘예뻐진다’는 믿음이 현실이 되기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가격이 비싸면 효과도 좋을까
“아무리 좋은 화장품이라도 브랜드 인지도와 자본력이 없으면 백화점에서 팔 수 없어요. 수입 명품 브랜드만 맹신해선 안 됩니다.”(피 씨)
저가에서 초고가까지 다양한 화장품을 써봤다는 이들은 반드시 비싸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물론 비싼 화장품이 흡수력이나 여러 면에서 좋아요. 새로운 기술력도 돋보이고요. 하지만 가격 대비 성능을 따져보면 저렴한 게 나을 때도 있어요.”(이 씨)
“화장품 가격에는 연구개발(R&D) 비용, 제조원가, 광고비, 용기 값 등이 포함돼 있어요. 비싼 화장품은 그만큼 좋은 원료를 쓰고 R&D를 많이 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맞는지는 따져봐야 합니다. 한국엔 안 들어왔지만 미국 브랜드 올레이의 20달러짜리 로션이 얼마나 좋은데요.”(강 씨)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화장품값 10배 비싸면 효과는 4배 정도 좋아”
시세이도 36년 근무 사카이 씨
세계적인 일본 화장품업체 시세이도에서 36년간 근무한 사카이 쓰요시(사진) 일본 기업연구회 브랜드매니지먼트포럼 대표는 “화장품은 TV나 컴퓨터처럼 성능에 좌우되는 상품이 아니라 소비자가 기대하는 가치를 담는 상품”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소비자가 화장품에 기대하는 가치는 자신에 대한 격려와 피곤한 일상을 마친 후 화장품의 향 등으로 치유받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 화장품은 성능보다 정신적인 가치에 초점을 맞춘 문화상품이란 뜻이다.
시세이도의 브랜드 컨설팅을 담당한 브라비스 인터내셔널 사사다 후미 대표는 “아무리 싸구려 화장품이라도 식품의약품안전청 기준을 통과했기 때문에 피부에 나쁘지 않다”며 “여성들은 좀 더 비싼 화장품을 통해 자신의 꿈이 실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세이도는 유통 단계별로 중저가와 고가 제품을 내놓고 있다. 성능 차이는 얼마나 나는 걸까.
사카이 대표는 “가격이 10배 비싸다면 성능은 3∼4배 차이가 날 수 있다”며 “성분과 브랜드 가치 등이 가격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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