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와 온천의 나라, 아이슬란드식 수사 반장인 ‘저주받은 피’(영림카디널)가 국내에 소개됐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저주받은 피’의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은 스칸디나비아 일대에서는 ‘흥행 보증수표’로 알려진 추리소설 작가이다. 그는 ‘저주받은 피’(2002년), ‘무덤의 침묵’(2003년) 등 ‘에를렌두르 반장 시리즈’로 북유럽 최고의 추리소설상인 ‘글라스 키(glass key)’를 최초로 연속 수상한 바 있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전형적인 아이슬란드식 살인사건, 즉 우발적이고 무의미하고 어설픈 노인 살해사건이 발생한다. 단 한 가지, 살인 현장에 남아 있는 ‘내가 바로 그다’라는 메시지만이 유일하게 이것이 계획된 범죄임을 암시한다. 수사반장 에를렌두르는 이 단서를 토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범죄의 씨앗을 찾아 올라간다.
실제로 연쇄살인이 끊이질 않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아이슬란드는 추리소설의 배경으로 적합하지 못하다고 지레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 보급률 세계 최고, 한국과 비슷한 크기의 국토면적, 단일민족 구성 등 의외로 우리와 닮은 면이 많기 때문일까. 지명과 이름이 낯선데도 불구하고 사건과 인물의 실체가 생생하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저주받은 피’는 범죄수사라는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가장 아이슬란드적으로 풀어내 성공한 작품이다.
특히 동물적인 감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하드보일드파 에를렌두르 반장은, 할리우드의 명탐정 부럽지 않게 장수할 수 있는 캐릭터이다. 21세기 한국형 수사반장과 경찰소설은 언제쯤 등장하게 될는지. 가장 아이슬란드적인 수사반장으로 세계 추리소설계에 도전장을 낸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에게 질투가 날 따름이다.
한혜원 계원조형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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