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수프가 식는다” 천재속의 인간

  • 입력 2007년 4월 7일 02시 59분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피터 브룩. 두 사람의 공통점은 다재다능한 예술인이었다는 점이다. 또 자신에 관한 기록을 꼼꼼히 남겨 전달했다는 점도 닮았다. 다빈치가 화가이자 발명가, 음악가, 과학자, 철학자로 사실상 모든 분야에 천재성을 유감없이 드러냈다면 피터 브룩은 연극 영화 뮤지컬 오페라 등 공연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재능을 과시했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엔 500여 년의 간극이 있었고, ‘천재성’에 관한 한 다빈치에 대한 평가가 앞서 있다는 차이점을 빼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평전/찰스 니콜 지음/480쪽·1만7500원·고즈윈

레오나르도 다빈치 평전은 ‘수프가 식기 때문에’라는 다빈치 최후의 메모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한 구절로 시작된다.

인류 역사상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 천재도 ‘수프가 식는다’는 하녀의 독촉에 기하학 메모를 작성하던 중 펜을 던지고 식당으로 달려가는 보통 사람이다. 저자의 시선은 그래서 ‘천재’가 아닌 ‘인간’ 다빈치에 모아진다.

여느 평전과 마찬가지로 연대기적인 접근을 하면서도 이 책은 추리소설 기법을 이용해 다빈치의 삶과 그 내면세계를 끈질기게 추적한다. 저자는 탐정이 돼 다빈치가 남긴 메모쪽지와 그림, 그리고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역사를 꿰고 엮어 그의 내면을 퍼즐 맞히듯 추리해낸다. 다빈치가 ‘최초의 기억’이라고 고백한 ‘솔개가 요람에 누워 있는 내게로 와서…’라는 회상을 프로이트식 꿈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다빈치의 정서적 불안감을 반영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다빈치는 고독을 예술가들이 갖춰야할 중요한 요소로 봤다. ‘홀로 있을 때는 철저하게 혼자여야만 한다. 만약 친구 한 명이 곁에 있다면 자신의 반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설파한다.

이 책은 매우 세밀하고 고증적이다. 그 만큼 다빈치를 추적하는 저자의 투지를 높이 사야할 것 같다.

윤영찬 기자 yycll@donga.com

◇피터 브룩/마이클 커스토 지음·허순자 정명주 옮김/504쪽·2만5000원·을유문화사

연극애호가들에게 피터 브룩 입문서로 딱 어울리는 책이다. 브룩은 오랜 우정을 쌓아온 저자에게 배우에게 연출노트를 주듯이 집필 도중 수많은 수정 노트를 줬다. 브룩이 ‘공인’한 그의 전기인 셈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2004년 여든의 나이에도 신작을 발표한 이 ‘살아있는 전설’의 60년 연극 여정의 총서다.

1985년 7월 5일 무더운 여름 저녁. 1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은 프랑스 동남부 론 강을 따라 배를 타고 20분을 갔다. 언덕을 오르고 고원을 넘어 채석장이 내려다보이는 아비뇽 페스티벌의 시외공연장에서 이들은 ‘마하바라타’의 세계 초연을 지켜봤다. 한 남자가 절벽 꼭대기에 서서 호른을 불어 공연 시작을 알렸다. 12시간 후, 관객들은 지치고 멍한, 그러나 들뜬 상태로 다시 아비뇽 거리로 돌아갔다.

어둑어둑할 무렵에 시작해 눈부신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끝나는 12시간의 대작 ‘마하바라타’에 대해 나중에 어느 평론가는 이렇게 평했다. “이젠 자연마저도 피터 브룩의 연출 아래 있는 듯했다.”

피터 브룩은 기존의 연극 틀을 깬 전위적인 작품과 셰익스피어의 파격적인 재해석을 통해 ‘현대 연극의 급진적 정신의 표상’으로 꼽혀왔다. 영화 ‘파리대왕’ ‘거지 오페라’를 비롯해 오페라, 뮤지컬 등 다른 장르에서도 인정받은 다재다능한 예술가의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전기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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