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가는 책의 향기]법정스님의 따뜻한 글을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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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7년 4월 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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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이원복 국립전주박물관장
To: 유학을 떠난 딸 람에게
우리 막내 ‘보배로운 올리브’가 도시계획 공부를 위해 지난 화요일 바다를 건넜구나. 흔한 과외 한 번 받지 않고도 대학 건축과를 잘 마쳤지. 아빠와 같은 미술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에 전공으로 건축을 택했을 때 조금은 서운했단다. 하지만 네가 태어나기 전 타계하신 할아버지는 건축에 관계했으니 격세유전이란 생각이 들더구나.
같은 한자문화권인 일본으로 갔지만 빈 방을 보니 만감이 교체한다. 늘 밝고 상냥하며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씩씩했지. 또한 이미 20대 중반에 들어섰으니 신뢰와 함께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부모 앞에 자식은 철부지로 어리게만 보이나 보지. 외지 생활이기에 때로 외로움이나 잡념이 스밀 때 극복의 방법으로 독서와 박물관 미술관 순례를 권한다.
이런 때를 위해 위로와 평화를 주는 ‘와인 한잔’이나 ‘휴식 같은 친구’에 비견될 책 몇 권 네 짐 속에 넣고 싶구나. 전공서는 아니나 아빠 서재의 접근하기 쉬운 곳에 있는 책들이어서 너도 한 번쯤은 펼쳐 보았겠지.
먼저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로 시작하는 ‘논어’부터 챙긴다. 학문의 즐거움, 배움의 자세와 인간다움의 지침서이기에 아빠도 자주 읽곤 한단다. 처음부터가 아닌 어느 쪽을 펴든 대화체 글이기에 괜찮다. 그저 어른께 한 말씀 듣듯 임하면 되지. 읽을 때마다 다른 의미와 깊은 맛이 느껴진다. 중학교 시절 읽은 사서(四書) 전체를 한 권에 담은 ‘동양의 지혜’(을유문화사)나, 대학 시절 출간된 문고본 ‘신역 논어’(서문당)는 손때가 많이 묻은 책들이지.
불가(佛家)의 범주를 초월한 법정 스님의 글은 따듯하며 향기롭다. ‘영혼의 모음’을 필두로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 ‘텅 빈 충만’ 등 에세이 외에 아름다운 시어로 번역한 책도 있지.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하면 떠오르는 불교 최초의 경전 ‘수타니파타’를 함께 넣는다. 한두 구절씩 시를 읊듯 음미하라고….
익살은 모든 예술의 필수 요소다. 나아가 우리 삶에 생기를 부여하는 중요한 존재이지. 인도 출신 예수회 성직자로 영성 높은 앤서니 드멜로 신부의 ‘개구리의 기도’는 인도 특유의 깊은 내면 성찰과 명상에 가톨릭이 잘 융화된 글이다. 동서의 예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우화집이란다. 삶이 시들해질 때 접하면 뭉클한 감동과 생기를 얻곤 하지. 자신의 내면에 깃든 절대자와의 만남인 기도를 가능하게 한다.
가방의 무게를 생각해 부피 작은 책을 중심으로 골랐다. 너무 종교적이라 투덜댈지 모르겠으나 읽다 보면 슬며시 젖어 드는 책들이다. 삶과 자신을 성찰하게 하고 찌들고 지친 영혼에 감로수라고나 할까.
끝으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아름다움 이모저모를 전해 주는 장돈식의 ‘빈산엔 노랑꽃’을 첨부한다. 마치 여름 한차례의 소나기나 바람처럼 삶에 청량감을 준단다. 우리 가족의 보배인 네가 민족과 인류의 보배,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귀국하길 두 손 모아 기원한다. 파이팅!
2007년 화사한 봄날, 온고을 송죽재(松竹齋)에서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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