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회 신문의 날]정부광고 - 공정위 앞세워 비판언론 통제

  • 입력 2007년 4월 7일 02시 59분


일러스트레이션 황중환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황중환 기자
정부 산하 A공기업의 광고 담당자는 올해 1월 본보 직원을 만난 자리에서 “올해는 동아, 조선일보에 광고를 게재하기가 어렵다. 좋은 시절이 오면 다시 잘해 보자”고 말했다.

정부 광고에 대한 매체 결정이 실무자의 판단과는 무관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한 것. 이런 분위기는 정부 산하 공기업뿐만 아니라 중앙 부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국정홍보처는 ‘e-PR 시스템’을 만들어 공기업과 정부 부처가 이른바 ‘비판 언론’에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온라인으로 실시간 감시하고 있다. 신문의 경제적 존립 기반인 광고를 이용해 비판 언론을 교묘하게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도 특정 언론 통제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발행 부수와 광고 수주의 역전현상=정부의 광고 통제 양상은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실이 6일 공개한 ‘2000∼2006년 10대 일간지 정부 광고 수주 현황’ 자료를 보면 극명하게 나타난다. 박 의원실이 김대중(DJ) 정부 말기 3년(2000∼2002년)과 노무현 정부 최근 3년(2004∼2006년)의 정부 광고 수주 현황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발행 부수가 많은 비판 언론의 연평균 광고 수주 건수가 발행 부수가 적은 신문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에 따르면 본보는 2000∼2002년 DJ 정부 후반 3년간 총 1930건(연평균 643건)의 정부 광고를 수주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들어 최근 3년(2004∼2006년)간은 총 1804건(연평균 601건)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조선일보는 총 1836건(연평균 612건)→1740건(연평균 580건), 중앙일보는 총 2303건(연평균 767건)→2249건(연평균 749건)으로 줄었다.

반면 발행 부수가 적은 일부 신문의 광고 수주는 크게 늘었다. A신문은 같은 기간 총 2647건(연평균 882건)→3337건(연평균 1112건), B신문은 2513건(연평균 837건)→2895건(연평균 965건)으로 증가했다.

한국광고업협회 관계자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광고 효과와 효율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매체를 결정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밝혔다.

한양대 이민웅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정부 광고 집행은 이른바 ‘코드 신문’에 특혜를 주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김영석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도 “정부 홍보도 효율성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많은 사람이 보는 매체에 광고를 집행하는 것이 국민의 세금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윗선에서…”=지난해 10월 23일 행정자치부는 정부 광고를 대행하는 한국언론재단을 통해 본보에 최규하 전 대통령의 국민장 공고문 광고 게재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 광고는 이날 오후 갑작스레 취소됐고 결국 본보와 조선, 중앙, 문화일보 등 소위 ‘비판 언론’을 제외한 한겨레, 경향 등 6개 신문에만 게재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초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관광공사는 동아, 조선을 제외한 11개 매체에 정책광고를 게재했으며 한국전력공사도 같은 달 동아, 조선을 제외한 7개 신문에만 신입사원 채용공고를 냈다.

비판 언론에 대한 광고 게재의 어려움은 해당 부처, 공기업 실무자들의 입을 통해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B공기업의 광고담당 팀장은 올해 초 “동아일보에 광고를 하려고 했더니 상급 부처에서 매체를 돌리라고 했다. 그래도 하겠다고 했더니 ‘부처 로고를 빼고 하라’고 하더라. 이렇게 진행했는데 결국 다시 윗선에서 압력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매체에 대한 특별한 편견이 없는 실무자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C공사의 한 직원은 지난달 본보 직원을 만난 자리에서 “원래 동아, 조선을 주요 광고매체로 이용했으나 올해는 동아일보에 광고하기가 너무 힘든 상황이다. 이해해 달라”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최근 본보에 공고를 게재한 D공기업 측은 “(공고가 나가고) 여기저기서 아주 많이 시달렸다. 당분간 광고를 게재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E공사도 광고를 게재하며 “분위기가 그러니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쪽으로 배치해 달라”는 웃지 못할 요청까지 했다.

▽“악의적 대응 할 것”=지난해 12월 26일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출입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언론 보도와 관련해 비판적이지만 건설적인 보도는 얼마든지 수용하겠다. 하지만 악의적으로 보도한 것에는 악의적으로 대응하겠다”면서 “2007년부터는 순진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정위의 ‘순진하지 않은’ 행태는 참여정부 초기부터 시작됐다.

2003년 5월 정부는 원칙적으로 신문시장의 모든 공정 경쟁 위반행위를 정부가 직접 규제하되 공정거래위가 사업자단체(신문협회)에서 처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인정하는 경우에만 신문협회가 위반행위를 처리하도록 하는 내용의 신문고시 개정안을 의결했다.

결국 위임 여부도 공정위가 판단하기 때문에 사실상 신문시장에 정부가 직접 개입 또는 규제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이다.

이를 근거로 공정위는 2004년 5월 동아, 조선, 중앙 등 8개 신문사의 211개 신문사 지국에 대해 무가지 및 경품 제공 등 신문고시 위반 행위에 대한 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이 중 175개 지국에서 신문고시 위반 사실이 적발됐고, 이 가운데 위반 정도가 심해 과징금이 부과된 47개 지국은 모두 동아, 조선, 중앙 등 3개 신문사 소속이었다.

이에 대해 신문잡지부수공사기구인 한국ABC협회를 비롯해 한국광고단체연합회, 한국광고주협회, 한국광고업협회 등 4개 단체는 권 공정위원장에게 보낸 ‘과징금 결정에 대한 ABC협회와 광고계의 입장’이라는 의견서에서 “무가지 제공은 신문시장의 전반적인 문제인데도 ABC협회에 부수를 신고한 3사에만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성실하게 부수를 신고한 신문사가 도리어 불이익을 받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또 지난해 12월 신문 구독과 관련해 불편·위법 사례를 담은 수기를 공모한다고 발표했다. 공정위가 전 산업분야 중 특정 분야를 지정해 수기를 공모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공정위는 최우수상 1명에게 100만 원 등 220만 원의 상금을 내걸었다.

이에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8월 ‘신문 경품 및 공짜신문 안 주고 안 받기 캠페인’을 벌인다며 ‘100만인 서명운동’ 계획을 발표했다가 비판 여론이 일자 취소했다. 정부가 특정 업종의 시장질서와 관련해 서명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공정위의 비판 언론 옥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정위는 2004년 4월 불법 경품, 무가지 제공을 근절한다며 신문고시 포상금제(500만 원)를 도입했으며 지난해 5월 포상금을 1000만 원으로 올렸다. 1000만 원은 경기 화성연쇄살인사건, 박초롱초롱빛나리 양 유괴사건(1997년) 당시 경찰이 건 현상금과 같은 액수다.

2004년 8월에는 공정위 박모 사무관이 열린우리당 문학진 의원에게 언론개혁 등의 내용이 담긴 ‘신문시장 개편방안’ 문건을 전달한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신문고시 담당이었던 박 사무관이 전달한 문건에는 △각 신문의 논조 분석 △지국 조사에 이은 본사 조사 시기 △동아, 조선, 중앙 등 3대 메이저 신문의 수익성 분석 등에 대한 내용까지 담겨 있었다.

이민웅 교수는 “고르고 공평하게 법을 집행해야 할 공정위가 언론분야를 대상으로 피해 수기 모집, 포상금 등을 내건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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