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신욱]아베 신조 일본국 총리께

  • 입력 2007년 4월 9일 03시 04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께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부에 의한 위안부의 강제동원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또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관방 부장관은 “나는 일부 부모들이 딸을 팔았던 것으로 본다. 그렇다고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뜻은 아니다”고 했습니다.

당시 중국, 남태평양, 미얀마 등지로 끌려가 일본 군인에게 짓밟히고 평생을 회한과 고통 속에서 살아오면서 이제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할머니들의 한 맺힌 증언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데도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는지 대한민국 국민은 분노를 느끼기에 앞서 아연실색할 따름입니다.

일본은 패전 후 퇴각하면서 조선총독부의 기록 문서를 소각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위안부로 끌려가 희생당한 여성의 수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남아 있는 자료와 관련자의 증언을 종합한 결과에 따르면 일제는 1937년부터 한국 여성을 중국으로 데려가 ‘위안소’ ‘육군오락소’ 등의 명칭을 가진 군 시설에 배치해 군인의 노리개로 삼았다고 합니다.

1944년에는 ‘여자 정신대 근로령’을 공포해 만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한국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수는 20만 명이나 되며, 현지에서 죽은 사람도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심지어 군수공장에서 일하게 된다고 속이고 남방전선에 위안부로 보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여성에 대한 최대의 범죄로 기록될 것입니다.

위안부 역사왜곡 그만두고

1998년 제네바 유엔인권소위에 제출된 ‘맥두걸 보고서’도 전시 강제 매춘을 노예행위로서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일본 군부에 의한 위안부 강제 동원을 확인할 국제위원회 설립을 권고했습니다.

역사상의 사실은 결코 순수한 채로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고, 기록자의 마음을 통해 굴곡되고 역사가에 의하여 만들어진다고 하더니 아베 총리께서 역사를 굴곡시키고 만들려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세계로부터 비난이 쏟아지자 아베 총리께서는 사과한다고 했지만 내용을 보면 “어려움을 겪었던 분들에게 동정을 느끼며 당시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알듯 말듯 한 말씀을 하셔 진정성에 대하여는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일본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나라입니다. 일제는 36년간 우리 민족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주었고, 그 고통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제2차 세계대전 후 한반도에 38선이 그어진 일도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한 미국과 소련의 협상 결과였습니다. 이후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라져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습니다. 아직도 분단의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 또한 일본과 무관하지 않다면 논리의 비약이라고 하겠습니까?

대한민국이 일본과 악수를 한 이유는 일제 만행의 역사를 잊어서가 결코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공유하는 국가로서 불행했던 역사를 거울삼아 양국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추구하자는 대의를 따른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일본의 지도자는 적어도 양국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언행만은 삼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양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가끔 대한민국 국민을 분노케 하는 망언으로 양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진솔한 사과의 말 듣고 싶다

위안부 문제는 정치적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양심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베 총리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은 역사의 왜곡이라는 우려의 차원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실현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이상에 대한 위선적 태도를 느끼게 하여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한일 양국의 지도자는 후손이 양국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초석을 마련해 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상호존중과 양국의 역사에 대한 공통의 인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아베 총리의 진솔한 사과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강신욱 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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