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골레토' 역으로만 150여회 이상 세계의 무대에 섰던 바리톤 고성현(47) 씨. 오페라 종가(宗家)인 이탈리아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바리톤 4명의 목소리를 합친 것과 같다고 해 '콰트로 바르티니'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는 "오페라는 발성만으로 되지 않는다. 수학문제 풀듯이 나만의 비법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양대 음대 교수로 재직 중 2000년부터 6년간 안식년과 휴직을 거듭하며 이탈리아, 독일, 미국, 프랑스 등 세계무대에서 '토스카' '안드레야 셰니에' '아이다' 등 오페라에 300여회나 출연했다. 그가 3년 만에 국내 무대에 선다. 12~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서울시립오페라단의 '리골레토'에서다.
그의 장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엄청난 성량. 야외극장에서 열린 푸치니 페스티벌에서 '토스카'에 출연할 때 목소리가 어찌가 우렁찬지 담장을 넘긴 장외홈런 같다고 해서 '동양에서 온 대포'라는 별명도 얻었다. 2002년 독일 함부르크 극장에서 드라마틱 테너 호세 쿠라와, 2006년 프랑스 오랑주 페스티벌에서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와 함께 출연한 무대에서도 그는 힘찬 성량과 연기력으로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 별명을 얻기까지 정말 열심히 했어요. 심지어 자면서도 카루소에게서 노래를 배우는 꿈을 꾸다가 몽유병 환자 취급을 받았죠. 그러나 '대포' 소리는 어차피 '한 방'입니다. 아낄수록 좋은 거죠. 박찬호가 강속구로만 살아남을 수 없듯이 말이죠."
그는 이제 10대의 딸 질다를 둔 아버지 리골레토와 비슷한 나이가 됐다. 그는 "딸을 잃는 아버지의 내면의 독백을 표현해내는 데 가장 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김치, 깍두기 먹는 사람이 유럽무대에서 레나토 브루손, 레오 누치 보다 '리골레토'를 잘 하기 위해선 목소리 속에 문화(culture)가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심청'의 아버지나 '질다'의 아버지나 신앙처럼 지켜온 딸을 잃게 되는 슬픔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02-399-1114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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