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답사기 30선]<5>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1, 2

  • 입력 2007년 4월 11일 02시 59분


《오르세에서도 새삼 느낀 것이지만, 사실 파리의 매력적인 분위기와 예술, 짙은 인간적인 냄새는 모두 현실과의 투쟁을 통해 쟁취한 것이다. 근대의 격동기를 삶과 예술 양면으로 치열하게 부대껴 온 파리는 산의 높음과 골의 깊음을 모두 다 맛보았다.》

처음 유럽여행을 떠나 미술관을 순례하던 추억을 잊을 수 없다. 왜 그토록 강박적으로 작품들을 보고 돌아다녔는지. 허겁지겁 돌아다니던 미술관 순례의 날들은 지금 생각하면 민망하기만 하다. 누가 등 떠밀었던 것도 아니건만 루브르, 오르세 하는 식으로 핑핑 돌아다니다가 밤이면 부어오른 다리를 침대 모서리에 걸치고 ‘이 몹쓸 미술관들…’ 하고 푸념했을 정도였으니까.

어디 다리만 고생이었으랴. 간단한 한국어 해설서 같은 것 하나도 없어 주마간산하며 깨알같이 쓴 감상메모 탓에 눈도 핑핑 돌아가야 했었다. 나중엔 머릿속이 하얗게 진공상태가 되어 낮 동안 무얼 보았는지조차 기억에 없었다. 그때 부러웠던 것은 일본어 가이드북을 뒤적이며 천천히 둘러보던 일본인 관광객들이었다.

‘우리는 언제…’ 하고 돌아왔는데 내 미술관 초보여행 10여 년 만에 이주헌의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마침 국내에 미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미술관 여행이 잦아지면서 유럽 미술관을 찾는 한국인의 발길이 부쩍 늘어나던 때여서 책에 대한 호응은 높았다.

이 책을 들고 미술관을 찾는 사람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고 미술사가나 평론가들과 함께 떠나는 미술관 투어 붐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10여 년간 스테디셀러로서 자리를 잡다가 최근에 다시 개정판이 나왔는데 예나 이제나 이 책의 미덕은 관객과 호흡을 함께하고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는 데 있다.

미술사적인 지식이나 전문용어를 잔뜩 나열하며 사람을 주눅 들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림 앞에 서서 도란도란 얘기하듯 글을 쓰고 있는 것인데 바로 이 점이 지난 10여 년간 독자에게서 사랑받아 온 원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작가는 아내와 함께 땡이와 당게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미술관 여행을 떠나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아내에게 들려주고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며 책이 완성되어 간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가족간의 에피소드며 사진 등이 책의 군데군데 삽입되어 친숙함을 더해 주고 있다. 더불어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유럽의 주요 미술관을 일목요연하게 개괄한 뒤 한 사람의 한국인 미술평론가로서 유럽미술의 특질을 구체적 시각으로 조망하고 우리의 감성과 언어로 해석해 보려 노력하였다’고. 확실히 저자는 자신의 언급처럼 자신의 언어와 시각으로 미술관에 걸린 작품들을 새롭게 읽고 해석해 내려 노력하고 있음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그의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이 내용의 깊이를 더해 주고 있고 대학에서 그림을 그렸던 바탕에 기초한 기법이나 용어의 해설 또한 자연스럽게 동원되어 작품들에 대한 입체적 이해를 돕고 있다.

이번 개정판에는 초판 이후의 유럽미술관 변동 사항이나 새로운 미술관에 대한 정보가 보완되어 있다. 그간의 독자들에게 준 듬직한 신뢰가 이어져 10년이나 20년 후에도 이 책은 여전히 유럽미술관기행의 독보적 자리 매김을 하게 될 것 같다.

김병종 서울대교수 화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