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공지희의 어린이 콩트]<3>나는 ADHD다

  • 입력 2007년 4월 17일 03시 00분


“준영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학교에 한번 오시라는 담임선생님 전갈을 받고 선생님을 찾아간 준영이 엄마는 선생님의 이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교무실을 나온 엄마는 당장 준영이를 불러 세웠다.

“너, 왜 그렇게 선생님 말을 안 듣니?”

“나, 선생님 말 잘 들어요. 선생님이 내 말을 안 듣지.”

준영이는 억울했다.

선생님은 질문해도 대답도 잘 안 해주고, 어떤 때는 아예 못 들은 척까지 하면서 나보고 말 안 듣는다고 엄마한테 이르고, 병원에까지 가라고 하다니….

엄마는 담임선생님에게 받은 쪽지를 의사 선생님에게 보여 주었다.

‘산만하고 집중력이 없음. 남의 말에 잘 끼어들고,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고 엉뚱한 질문을 자주 함. 교실에서도 안절부절못하고 자주 움직임.’

의사 선생님은 쪽지를 읽더니 이렇게 말했다.

“에이 디 에이치 디(ADHD)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준영이 엄마와 준영이의 얼굴을 번갈아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알아듣기 힘든 네 마디를 했다. 엄마는 깜짝 놀랐다.

“엄마 나 많이 아픈 거야? 죽을 병 걸린 거래?”

엄마는 준영이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퉁바리를 놓았다.

“죽긴 뭘 죽어. 이 사고뭉치야. 선생님 말 안 듣는 병이란다. 선생님 말 잘 듣고, 궁금한 거 있어도 물어보지 말고, 혼자 아는 체하지 말고, 움직이고 싶어도 참고, 알았지?”

엄마는 아버지와 말할 때 한층 심각해졌다.

“준영이 이제 어떻게 해. 에이 디 에이치 디래.”

“무슨 말이 그리 어려워? 우리 아들이 어디가 어떻다고?”

“왜 있잖아. 우리말로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엄마가 영어로 ‘에이’ 어쩌고 할 때 잔뜩 미간을 찌푸렸던 아버지는 우리말 풀이를 듣자 금세 표정이 풀리면서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난 또 뭐라고. 그러니까 주의력 부족에 과잉행동? 그러니까 좀 부잡스럽다 그거 아냐?”

“학습 장애래. 공부도 못 한다잖아.”

“그게 무슨 병이라고. 나도 어릴 때 준영이하고 똑같았어. 말썽 피우고, 선생님 말 안 듣고, 부잡스럽고. 내 통지표에 쓰여 있던 말 그대로네.”

“그게 뭐 자랑이라고. 유전인가?”

“요즘 애들은 좁은 데다 꽉 붙잡아 앉혀 놓고 공부만 하라고 하니까 애들 몸이 못 견디는 거야. 학교에서 공부, 학원 가서 공부, 집에 와서 학습지, 과외…. 애들은 막 뛰어놀고 움직여야 머리도 맑아지고, 공부도 하고 그러지. 우리 때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나면 집에 와서 책가방 던져놓고 들판으로, 산으로, 친구들 집으로 돌아다니면서 실컷 놀았잖아. 집에 오면 몸이 피곤해서 숙제도 제대로 못하고 곯아떨어지고 그랬지. 그래도 다음 날 되면 눈빛도 또랑또랑하고 몸이 가뿐했어. 근데 요즘 애들은 아침에 학교 가는 거 보면 어른들보다 더 피곤해 보여.”

“그래서 어쩌라고? 준영이를 그냥 놀게 놔 둬? 바보 되라고?”

엄마의 따발총 공격에 아버지는 입맛만 다셨다.

준영이는 약을 먹어야 했다. 먹기 싫은 약을 들여다보면서 준영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커다란 하얀 약은 공룡알 초콜릿, 동그란 빨간 약은 미니 바둑알, 꼬물꼬물 작은 알파벳이 박힌 약은 새콤한 젤리.

약을 먹으면 준영이는 달라졌다.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하늘을 날 것같이 가벼웠던 몸이 점점 무거워졌다. 침대에서 뛰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고, 동생이 아무리 장난을 걸어와도 맞장구치기도 싫어졌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준영이는 운동장에 나가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있거나 엎드려 잠을 잤다.

쉬는 시간에 단짝 정현이가 닭싸움을 하자고 했는데, 준영이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귀찮아. 안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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