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ds]에야~ 디야~ 소리에 빠진 아이들

  • 입력 2007년 4월 20일 03시 00분


이다훈 군(왼쪽)이 박정욱 명창의 장단에 맞춰 흥겹게 창을 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소리를 배우면서 예절 교육도 가능한 것이 국악의 매력이다. 원대연 기자
이다훈 군(왼쪽)이 박정욱 명창의 장단에 맞춰 흥겹게 창을 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소리를 배우면서 예절 교육도 가능한 것이 국악의 매력이다. 원대연 기자
국립국악원의 국악 강습회에서 장구를 배우는 어린이들. 사진 제공 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의 국악 강습회에서 장구를 배우는 어린이들. 사진 제공 국립국악원
《“에야 디야 개야 개야 노랑개야, 개야 짖지를 마라. … 개야 개야 바둑개야….”

서도 명창 박정욱(43) 씨가 운영하는 서울 중구 신당동 ‘가례헌’.

이다훈(11·서울 삼릉초 5년) 군이 ‘개타령’을 부른다.

가례헌은 중요무형문화재 29호 서도소리(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의 민요와 잡가)의 ‘김정연류’ ‘이은관류’ 이수자인 박 씨가 사재를 털어 마련한 문화공간이다.

영화 ‘서편제’ ‘천년학’과 드라마 ‘황진이’. 우리 소리는 영화나 드라마 화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 서양 악기에 익숙한 자녀에게 국악을 배우게 하는 부모들이 요즘 부쩍 늘었다.

국립국악원과 국립극장 문화학교 등이 개설한 국악 강습 프로그램에는 초등학생이나 가족 단위의 수강생이 적지 않다.》

국악 강습프로그램 인기… 생활습관 교정에도 도움

○ “우리 것이 좋아요”

고운 한복이 잘 어울리는 다훈이는 8세 때부터 국악 교육을 받았다. 강령 탈춤과 장구를 익히다 요즘은 토요일마다 서도소리를 배운다. 중학교 1학년생인 다훈이의 누나 은지 양도 6년간 국악을 배웠다.

“누나가 먼저 국악을 하고 제가 나중에 배웠는데 더 잘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어요. 장구는 잘 치고, 단소는 조금 불어요. 그래도 학교에서는 제일 잘 분대요.”

다훈이의 강령 탈춤은 수준급이다. 그래서 곧잘 어른들과 함께 공연 무대에 선다.

다훈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서양 음악을 먼저 접했다. 특이한 것은 나중에 배운 국악에 훨씬 흥미를 느낀다는 점.

“국악과 서양 음악은 달라요. 국악에서는 우리 것의 멋과 여유를 느낄 수 있어요. 요즘은 서도소리가 정말 좋아요. 서도소리는 빠르고 높고 경쾌해 전라도 지방의 소리와도 달라요.”

○ 어린이 국악 교육은 어떻게?

전문가들은 유아기 국악 교육은 우리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5, 6세에는 놀이 형태로 율동과 호흡, 말과 몸의 장단, 국악 동요 등을 익히는 것이 좋다. 이 시기가 지나면 가벼운 소고나 장구 등의 악기를 다루게 한다.

명지대 사회교육원 정성자(국악과) 교수는 “어린 시절 접하는 국악은 악기와 춤, 소리 등을 따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종합예술 형태’로 한꺼번에 습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제대로 국악 교육을 받으면 몇 개 악기에 치중하는 서양 음악 교육에 비해 정서적, 음악적 효과가 훨씬 크다”고 말했다.

초기에 접하는 국악기는 소고나 장구, 북 등 타악기가 좋다. 타악기는 리듬감을 익히기에 제격이다. 특히 양손을 쓰는 장구는 두뇌의 균형 잡힌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단국대 서한범(국악과) 교수는 “국악 영재가 아니라도 초등학교 때 판소리를 배우면 성량이 커지고 부정확한 발음을 교정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확인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다훈이가 배운 것은 국악만이 아니다.

“예전엔 밥 먹으면서 막 뛰어다녔죠. 한 숟가락 먹고 사라지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고 잘 참아요.”(어머니 구연지 씨·45)

아이는 국악과 만나면서 훨씬 의젓해졌다. 구 씨는 “아이가 차분해지고 자신감도 커졌다”며 “어떤 때는 벌써 철이 들었나 싶을 정도로 예절도 바르다”고 말했다.

생활습관도 많이 바뀌었다. TV 시청과 컴퓨터 게임 시간이 크게 줄어든 대신 누나와 함께 악기를 연주하는 시간이 늘었다. 좋아하는 게임은 휴대용 저장장치에 담아 짬짬이 즐긴다.

○ 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다훈이의 소리 선생님인 박 씨는 ‘서도소리에 미친 사람’으로 불린다.

1983년 군부대 취사병이었던 그는 부대에서 쓸 떡을 구하러 서울에 나왔다가 잠실 석촌호수에서 운명의 소리를 들었다. 평양 권번의 마지막 기생세대로 인간문화재였던 김정연 선생(1987년 작고)의 수심가(愁心歌)였다.

“키가 150cm도 안 되는 할머니가 소리를 하는데 마치 벼락을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 길로 내 운명은 정해졌지요.”

다음 해에 제대한 그는 병마에 시달리는 김 선생을 찾아 소리를 배우며 스승의 말년을 지켰다. 가례헌에는 은사의 유품이 전시된 ‘금홍관’(김정연 선생의 기명에서 따온 명칭)과 배뱅이굿으로 유명한 이은관(91) 옹을 위한 방이 있다.

“소리요? 다 팔자고 운명이죠. 김 선생님이 작고한 지 올해로 20년이 됩니다. 그때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그 소리를 찾아갈 겁니다.”

그의 어린 제자가 배뱅이굿의 한 대목을 불렀다.

“서산낙조 떨어지는 해는 내일 아침이면은 다시 돋건마는 황천길이 얼마나 먼지 한번 가면은 다시 못 오누나 에∼.”

서도소리 특유의 고음이 아이의 목소리에 섞여 좁은 공간에 메아리친다. 열한 살 다훈이가 배뱅이의 한(恨)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소리는 그렇게 전해지고 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국악 배우기 어디가 좋을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국악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다.

아이가 지루하게 느낀다면 가뜩이나 생소한 국악과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국악 교육 프로그램은 체험을 위주로 초보적인 강습이 가능한 곳과 중요무형문화재 이수자 등 전문가가 운영하는 시설로 나눌 수 있다.

국악놀이연구소 노병갑 사무국장은 “초기에는 백화점 문화센터나 지역 구민회관 등에 개설된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며 “기초 강습을 통해 아이의 적성이 국악에 맞는다는 점을 확인한 뒤 전문가 교육을 받아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국립국악원(www.ncktpa.go.kr)은 가족국악배움터, 토요가족문화나들이, 유아가족국악나들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가족국악배움터는 매주 토요일에 가족 단위로 국악 교육을 한다. 내용은 사물놀이, 단소, 가야금, 소금, 해금, 장구, 전래동요 등이다.

토요가족문화나들이는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초등학교 휴업일에 맞춘 것으로 국립현대미술관과 연계한 문화체험 프로그램이다. 미술관은 현대미술 감상 및 이론교육을 실시하고 국악원은 장구와 전래동요, 전래놀이를 가르친다.

유아가족국악나들이는 매월 첫째, 셋째 주 토요일 유아(5∼7세)가 포함된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연령에 따라 교육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므로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한 뒤 수강하는 것이 좋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www.fpcp.or.kr)은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서울무형문화재전수회관 기획전시실에서 ‘우리 악기 보고 듣고’전을 연다. 이 전시회에는 놀이를 통해 전통 악기를 접하는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국립극장 문화학교(www.artedu21.or.kr)는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전통무용과 창, 악기 등의 국악 강습을 진행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창극반에서 소리 교육 및 연극 경험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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