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디자이너의 예기치 않은 질문이었다.
“글쎄요. 환경을 오염시킬 것 같고….”
“책의 실용과 디자인의 미학, 이런 측면에서 한 번 생각해 보시죠.”
“실용과 미학이라고요? 무언가 심오하고 매력적인 얘기일 것 같습니다만….”
요즘 출간되는 책들은 대부분 표지를 코팅한다. 표지를 디자인하고 그걸 인쇄한 뒤 그 위에 비닐로 코팅을 하는 것이다.
코팅은 당연히 표지를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서 한다. 즉 실용의 목적이다. 그렇다 보니 출판사 대표들은 대체로 표지 코팅을 선호한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사람들의 손때를 타도 표지가 쉽게 훼손되지 않기 때문이다. 출판사로 반품되는 책들을 다시 판매하려면 책 표지가 새것처럼 유지되어 있어야 한다. 옆에 있던 출판사 대표의 입장은 단호했다.
“책을 유통시키는 데 코팅하지 않는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북 디자이너의 생각은 이와 달랐다. 세월이 지나면 책이 좀 너덜너덜해지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코팅을 하면 표지 종이 자체의 질감이 사라짐으로써 디자인의 미학과 디자이너의 의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실용 못지않게 예술 작품으로서의 표지 미학도 중요하다는 게 그 디자이너의 주장이었다.
맞는 말이다. 사실, 코팅하지 않은 표지가 코팅한 표지보다 더 매력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코팅하지 않은 책을 보면 표지를 자꾸만 쓰다듬어 보게 된다.
하지만 상품으로서의 내구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출판사 대표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특히 코팅을 하지 않는 것은 출판사로선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인쇄와 제본 과정에서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코팅하지 않고 제본한 책을 바로 쌓아 놓으면 덜 마른 잉크가 다른 책에 묻어나곤 한다. 그래서 한 권 한 권 일일이 표지를 말려야 한다.
실용과 미학의 갈등 혹은 딜레마라고 할까. 표지 코팅은 그런 것이다.
얘기는 코팅에서 표지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표지 디자인의 과잉, 비슷비슷한 디자인 스타일 등에 관한 얘기였다. 그 디자이너의 목소리 톤이 좀 올라갔다.
“디자인이 경쟁력이라고요? 천만의 말씀. 내용이 경쟁력입니다. 표지를 예쁘게만 꾸미려고 하는 디자이너들의 관행은 고쳐져야 합니다. 본질이 왜곡되거나 사라지면 곤란합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건축가가 거들었다.
“몇 년 전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보니까 MIT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표지 디자인에 관계없이 무조건 사더군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건 책 내용을 100% 신뢰하기 때문이었죠.”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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