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의 화가’ 이숙자전 5월 12일까지 선화랑

  • 입력 2007년 4월 23일 03시 01분


이숙자 교수의 ‘이브의 보리밭’. 자연의 보리밭에 여성의 누드를 배치해 생명의 역동성을 표현했다. 사진 제공 선화랑
이숙자 교수의 ‘이브의 보리밭’. 자연의 보리밭에 여성의 누드를 배치해 생명의 역동성을 표현했다. 사진 제공 선화랑
“보리밭에 가면 아직도 수많은 비밀이 속삭입니다. 보랏빛 노을이 일기도 하고, 왕자처럼 늠름한 보리도 있어요.”

1977년 이후 30여 년간 보리밭을 그려 온 이숙자(고려대 미술학부) 교수에게 보리밭은 여전히 연애의 대상인 듯하다. 강원 철원이나 전북 고창에 이르기까지 안 다닌 곳이 없지만 갈 때마다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이 펼쳐진다”고 말한다.

5월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02-734-0458)에서 마련하는 전시는 1980년대 이후 대표작을 일별하는 자리다. ‘보리밭’ ‘이브의 보리밭’ 시리즈 3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풋풋한 보리 냄새가 코 안에 성큼 번져 오고 보리로 가득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보리의 알갱이와 수염을 세밀하게 그린다. 너무나 세밀해 ‘보리 도깨비’라는 소리도 들었다.

돌이나 보석 가루를 아교에 섞어 바르는 석채 기법으로 보리 알갱이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 작가는 “알갱이를 보면 만삭의 여인을 보는 것처럼 잉태에 대한 경외가 밀려온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에서 보리밭은 청맥 황맥 백맥으로 다채롭게 표현된다. 그는 황맥과 청맥을 볼 수 있는 시기와 지역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의 스케치 여행기는 한국의 ‘보리 지도’인 셈이다.

이번에는 이 교수가 보리밭에 여성의 뇌쇄적인 누드를 배치한 ‘이브의 보리밭’ 첫 작품(1989년)도 함께 선보인다. 근육질의 여성이 취한 포즈와 눈빛이 도발적이다. 여성의 음모를 세밀하게 그린 작품도 있는데 스승 천경자 화백이 “감추면 어떻겠느냐”고 했을 정도다. “조금만 감추면 더 많이 팔 수도 있는데…”라는 화상의 권유도 있었다.

이 교수는 “10년 넘게 그린 보리밭을 벗어나기 위해 고민하던 중 떠올린 소재가 여성의 누드였다”며 “여성의 포즈와 시선이 당당한 것은 여성의 주장이자 생명에의 경이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11남매의 장남과 결혼해 시집살이와 학업, 작품 활동을 병행해 왔다.

허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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