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 할인마케팅]거품 낀 티켓 가격…제돈 내면 바보?

  • 입력 2007년 4월 25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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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여자면 20% 할인, 수요일-대학생 20% 할인, 목요일-직장인 20% 할인, 금요일-남녀 커플 20% 할인, 5월 1일 근로자의 날 직장인 30% 할인, 5월 5, 6일 어린이날 기념 1만 5000원 균일가, 5월 8일 만 40세 이상 30% 할인, 부모님과 오는 관객도 30% 할인, 15일 스승의 날 유치원 및 초중고교 교사 대학교수, 학원 강사, 사범대나 교육대생은 30% 할인, 5월 22일 만 20세가 된 성인과 동반한 3인까지 50% 할인, 그리고 ‘기타 상시 할인’….”》

코믹 무술퍼포먼스 ‘점프’가 내놓고 있는 각종 할인 혜택이다. ‘순진한’ 관객은 고민한다. 직장인인 걸 증명하려면 재직증명서를 떼어 가야 하나? 학원 강사는 어떻게 하지? 걱정할 필요 없다. 증명 안 해도 되니까. 기획사 측은 “(아무) 명함을 가져오면 직장인으로 간주한다”며 “스승의 날 할인도 어차피 관객에게 그날은 할인해 주겠다는 취지이므로 와서 교사라고 말하면 그냥 깎아 준다”고 말했다.

이런 ‘거침없는 할인’은 ‘점프’만이 아니다. 매월 다양한 할인 이벤트를 진행하는 소극장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의 제작사는 4월을 맞아 숫자 ‘4’가 들어간 주민등록증이나 학생증, 운전면허증 등을 지참하면 40% 할인 혜택을 준다. 뮤지컬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는 명함이나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에 숫자 ‘5’가 들어가 있으면 20% 할인된다.

연극 ‘다리퐁 모단걸’의 경우 무료 회원 가입과 동시에 20% 할인쿠폰을 내려받을 수 있다. 공연을 시작했다고 30% 할인해 주고(연극 ‘임대아파트’), 연장 공연에 돌입했다고 30% 깎아 준다(연극 ‘70분간의 연애’). ‘화딱지 나는 화요일엔 전석 40% 할인’ ‘수틀리는 수요일엔 전석 40% 할인’(연극 ‘칠수와 만수’)도 있다. 심지어 지난 장마철엔 ‘우산 들고 오면 50% 할인’처럼 기발한 할인도 등장했다. 일종의 ‘박리다매’식 할인이다.

기획사가 이렇게 머리를 쥐어짜지 않더라도 할인 혜택은 널려 있다. 인터넷 공연 예매 사이트들의 자체 할인도 10∼30% 되고 신용카드사마다 10∼30% 할인해 준다.

이쯤 되면 할인은 ‘싼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하다. 왜 이렇게 할인이 난무하는 걸까. “할인을 해 주지 않으면 관객이 안 온다”는 것이 기획사의 하소연이다. 공연을 불과 1주일 앞둔 연극 ‘필로우맨’이 대표적인 예. 전체 1만8000석 중 24일 현재 25%인 4500장이 판매되는데 그쳤다. 7년 만에 연극무대에 서는 스타 캐스팅(최민식)에, 대학로 최고 흥행 연출가(박근형)라는 이름값이 무색한 초라한 예매 성적이다. “초대권도 없고 할인 마케팅도 안했더니 티켓이 좀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제작사의 분석.

카드사들의 할인 요구도 무시할 수 없다. 신용카드사들이 자사 고객에 대한 서비스로 할인을 요구하고 그 대신 고객에게 보내는 우편물에 공연 안내를 끼워 주기 때문.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이런저런 할인을 전제로 티켓 가격을 책정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한 대학로의 공연 기획자는 “일반적으로 20∼30%는 ‘깎인다’고 생각하고 이를 감안해 가격을 정한다”고 말했다. 20% 할인 받고 좋아하는 관객도 사실 ‘제 값 주고’ 공연을 보는 셈이다.

현재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한 연극의 경우 초연 당시엔 ‘거품’을 빼고 1만5000원이었다. 그러나 카드사 등의 할인 요구와 홍보 필요성으로 제작사는 재공연부터는 2만 원으로 가격을 올린 뒤 20∼30% 깎아 주고 있다.

어려운 공연 현실에서 홍보비를 따로 책정하기 힘든 만큼 카드사와의 제휴는 필수라는 것.

요즘 공연 중인 한 어린이 뮤지컬 관계자는 “가격 거품이 20% 안팎인 어른 공연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어린이 공연은 심하면 50%까지 거품”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날을 겨냥해 5월 4∼6일 극장용이 기획한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모차르트 음악회’의 경우 VIP석 티켓 가격은 5만 원이다. 그러나 2인 이상 구매 시 가격은 2만4000원으로 뚝 떨어진다. 어린이날에 아이가 혼자서 음악회를 보러 오는 경우는 없는 만큼 사실상 모두 50% 넘게 깎아 주는 셈. 이 극장 관계자는 “좋은 공연인데도 불구하고 티켓 가격이 싸면 엄마들이 별 볼일 없는 공연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일부러 높여서 5만 원으로 책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할인 마케팅은 가격에 대한 불신을 낳는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할인 위주의 마케팅 방식은 결국 가격 신뢰성을 잃게 하고 시장 왜곡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요즘 관객들은 20% 할인쯤은 당연하게 여기다 보니 할인이 없으면 티켓이 팔리지 않는다. 관객을 더 유인하기 위해서는 30∼40% 할인도 등장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티켓 가격의 거품도 커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뮤지컬 프로듀서 설도윤 씨는 “연중무휴 세일 같은 할인 마케팅 방식을 쓰다 보면 백화점 상품이 할인점을 거쳐 ‘땡처리’ 상품으로 전락하듯 공연도 망할 수밖에 없다”며 “RUG 같은 외국 대형 제작사는 공연의 평균 할인율을 3% 이하로 통제한다”고 말했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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