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시어, 익숙한 상처… 김중일 씨 첫 시집 ‘국경꽃집’

  • 입력 2007년 4월 27일 03시 02분


‘잠깐 엎드려서 낮잠을 자고 있었어. 꿈결인가…. 눈을 떴을 때, 나는 국경꽃집 카운터에 앉아 있었어. 나를 깨운 검은 그림자가, 다 시들어가는 꽃다발을 내 코앞에 들이밀고 있었어. 사내는 빠르고 거침없이 선반 위에 놓여 있던 카빈 소총 하나를 꺼내 철거덕, 장전하곤 새벽안개 속으로 녹아들어버렸어.’(‘국경꽃집의 일일’에서)

그는 죽었다. 연인이 그의 무덤 앞에 꽃을 놓았다.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연인은 슬픔과 분노에 차 있다. 시인은 이렇게 하나의 드라마를 만든다. 그리고 ‘죽음’을 ‘낮잠’으로, ‘무덤’을 ‘국경꽃집’으로, ‘분노’를 ‘카빈 소총’으로 바꾼다. 시 ‘국경꽃집의 일일’은 시인이 만들어 낸 공간이지만, 그는 다른 상상력이나 낯선 언어 감각을 보여 주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할,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노래한다.

이는 김중일(30·사진) 씨의 첫 시집 ‘국경꽃집’(창비)을 아우르는 주제이기도 하다. 김 씨는 최근 문단의 핫이슈인 ‘미래파’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새로운 어법이라는 환호도 있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는 비판도 뜨거웠다. 불편한 지적에 대해 김 씨는 담담한 편이다.

“나는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면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한참을 돌려 말한다. 그것도 그냥 에두르는 게 아니라 극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작인 ‘가문비 냉장고’의 경우 무대는 뒷산, 등장하는 캐릭터는 가문비나무와 누군가가 버리고 간 냉장고다. 가문비나무는 상처 입은 사람이며, 냉장고는 썩지 않는(지워지지 않는) 상처다.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시적 자아는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드물게도 이 시인은 이야기를 짓듯 시를 짓는다. 그의 시는 “또 하나의 해가 뜨고, 공룡이 출몰하고, 정수리를 간질이는 새가 날고 있다”(김혜순 시인)는 평을 듣는다. 단숨에 해독하긴 어렵다 해도 김 씨가 안내하는 ‘이상한 나라’는 가 볼 만한 여정이다. 그런데 독자에게 여행은 즐겁기보다 쓸쓸하다. 그 쓸쓸함은, 시를 읽는 사람 누구나 갖고 있을 ‘상처’ 때문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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