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죽었다. 연인이 그의 무덤 앞에 꽃을 놓았다.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연인은 슬픔과 분노에 차 있다. 시인은 이렇게 하나의 드라마를 만든다. 그리고 ‘죽음’을 ‘낮잠’으로, ‘무덤’을 ‘국경꽃집’으로, ‘분노’를 ‘카빈 소총’으로 바꾼다. 시 ‘국경꽃집의 일일’은 시인이 만들어 낸 공간이지만, 그는 다른 상상력이나 낯선 언어 감각을 보여 주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할,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노래한다.
이는 김중일(30·사진) 씨의 첫 시집 ‘국경꽃집’(창비)을 아우르는 주제이기도 하다. 김 씨는 최근 문단의 핫이슈인 ‘미래파’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새로운 어법이라는 환호도 있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는 비판도 뜨거웠다. 불편한 지적에 대해 김 씨는 담담한 편이다.
“나는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면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한참을 돌려 말한다. 그것도 그냥 에두르는 게 아니라 극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작인 ‘가문비 냉장고’의 경우 무대는 뒷산, 등장하는 캐릭터는 가문비나무와 누군가가 버리고 간 냉장고다. 가문비나무는 상처 입은 사람이며, 냉장고는 썩지 않는(지워지지 않는) 상처다.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시적 자아는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드물게도 이 시인은 이야기를 짓듯 시를 짓는다. 그의 시는 “또 하나의 해가 뜨고, 공룡이 출몰하고, 정수리를 간질이는 새가 날고 있다”(김혜순 시인)는 평을 듣는다. 단숨에 해독하긴 어렵다 해도 김 씨가 안내하는 ‘이상한 나라’는 가 볼 만한 여정이다. 그런데 독자에게 여행은 즐겁기보다 쓸쓸하다. 그 쓸쓸함은, 시를 읽는 사람 누구나 갖고 있을 ‘상처’ 때문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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