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인 기자의 어린 시절에는 땅과 자연이 놀이터였다. ‘땅 따먹기’ ‘칡 캐기’ ‘오징어’ ‘막자 맞추기’ ‘자치기’ ‘다방구’…. 꽃 피는 봄이 오면 누나를 따라 뒷산으로 쑥과 냉이를 캐러 다녔다. 마을 앞 시냇가에서 다슬기를 잡아 삶아 낸 뒤 탱자나무 가시로 빼곡히 꿴 다음 한입에 다 털어 넣던 그 맛이란….
오늘날 아이들의 놀이터는 더는 자연도 땅도 아니다. 콘크리트와 아파트, 자동차에 실려 학교와 학원을 오가고, 친구는 만날 시간도 없다.
요즘 세태겠거니 그냥 넘기고 싶겠지만 이 책은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잔뜩 겁을 준다. ‘자연결핍 장애’라는 생소한 병명까지 들이댄다.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은 자연결핍 장애를 겪는다’는 것이다.
미 브랜다이스대 사회정책 경영대학의 석좌교수인 저자는 자연결핍 장애의 증상으로 인체 감각의 둔화, 주의집중력 결핍, 육체적 정신적 질병의 발병률 증가를 꼽는다. 특히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의 원인이기도 하다는 것.
저자는 미국 전역을 다니며 3000여 명에 달하는 아이와 부모, 전문가를 인터뷰했다. 샌디에이고에서 만난 초등학교 4학년생 폴은 “저는 집에서 노는 것이 더 좋아요. 전기 콘센트가 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그랜드캐니언이나 요세미티 공원, 천혜의 자연 경관을 두고서도 아이들은 자동차 뒷좌석에서 TV나 닌텐도 게임에 열중한다.
자연에서 이탈된 아이들 때문에 사진작가 게이키 하기노냐는 큰 좌절을 겪었다. 20여 년간 일본 도시에서 어린이들이 노는 모습을 앵글에 담았던 그는 “밖에서 노는 아이들이 사라져서 이제는 이 주제를 접어야 했습니다. 집 안에서 노는 게 재미있어 졌거나, 밖에서 노는 것이 재미없어 졌거나 아니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 것 같습니다”라고 한탄한다.
미국에서 항우울제 처방을 받는 미취학 아동은 5년 전에 비해 두 배로 늘었다.
2000년부터 2003년 사이에 신경안정제나 항우울제 등 향정신성 의약품을 복용하는 전체 아동도 49% 증가했다.
사회적 흐름이라고 넘기기에는 저자가 던지는 문제의식이 너무 충격적이고 심각하다. 어디를 가든 숲과 나무와 공원이 지천인 미국이 이 정도라면 도대체 한국은 어쩌란 말인가라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많은 사례를 논거로 제시했지만 책의 강력한 메시지만큼 ‘자연결핍→정신과 육체의 질환’으로 이어지는 그 연결고리가 뒷받침되고 있지 않다. 그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원제 ‘LAST CHILD IN THE WOOD’(2005년).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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