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공간 속에 돈이 숨었다… ‘스페이스 마케팅’

  • 입력 2007년 4월 2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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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3월 개관한 일본 후쿠오카의 ‘캐널시티’. 유통복합시설인 이곳은 공간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디자인으로 관광객과 구매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사진 제공 삼성경제연구원
1996년 3월 개관한 일본 후쿠오카의 ‘캐널시티’. 유통복합시설인 이곳은 공간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디자인으로 관광객과 구매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사진 제공 삼성경제연구원
◇스페이스 마케팅/홍성용 지음 · 416쪽 · 1만5000원 · 삼성경제연구원

스페인의 오래된 중소공업도시인 빌바오는 바스크 주의 주도로서 바스크 분리 독립운동세력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거듭된 테러에 따른 치안 불안과 20세기 들어 석탄 산업의 침체 등으로 쇠퇴 일로를 걷던 이 도시에 다시 활력을 가져온 것은 바로 구겐하임 미술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유럽 분관의 형태로 건설한 빌바오 구겐하임은 건립 당시 파격적인 디자인과 예산 문제로 많은 반발을 불러왔으나 개관 후 연평균 1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해 빌바오 시민들에게 문화적 체험과 함께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스페이스 마케팅’이란 단순히 말하면 공간 활용법이다. 저자는 세계적인 유명 건축물 및 인테리어를 사례로 공간 활용이 창출하는 다양한 경제적 효과를 분석했다. 건축디자이너인 저자가 이야기하는 공간은 ‘마법의 손’과도 같다. 도시 속 기업의 건물은 기업이 존재하는 공간의 의미도 있지만 기업의 이미지를 마케팅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만남의 장소이자 기억의 재생지가 되기도 한다.

저자가 공간의 특별한 마법을 설명하며 가장 강조하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상업적 이해득실을 버릴 때 경제적 이득과 함께 그 밖의 부수적 효과가 따라온다는 것.

대표적인 사례가 루이비통 매장. 직설적 상업성을 내세우기보다는 순수한 조형적 측면을 강조하는 루이비통의 접근으로는 투자 수익을 즉시 회수하기 어렵다. 하지만 장기적 안목의 고급스러운 브랜드 전략은 이미 그 자체로 소비자의 인식 속에 자리하며 루이비통의 숨겨진 브랜드 마케팅을 더욱 강화했다. 브랜드가치를 확장하는 이러한 공간적 접근은 적지 않은 문화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충분한 부수효과를 제공한다.

많이 걷도록 설계된 공간은 상업적 수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교과서적 설명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일본 남쪽 후쿠오카에 1996년 3월 오픈한 캐널시티는 상업복합시설이다. 용지의 가운데를 파내 인공 수로를 만들고 건물들을 양편으로 분산시켜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긴 동선은 기존의 백화점식 배치와는 정반대다. 그러나 이 긴 동선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시각적 변화 때문. 5층 높이까지 솟는 분수의 물소리, 울려 퍼지는 음악 등은 개장 당일 방문객 20만 명이라는 기록적인 수치와 함께 후쿠오카를 세계적 도시로 이름나게 했다. 무엇을 사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즐기기 위해 고객을 유인하는 것이 ‘캐널시티’의 철학이었다.

크면 무식하다는 통설도 뒤집는다.

이 책에 따르면 런던의 랜드마크 격인 ‘런던아이’는 원래 거대한 원형 회전 관람차일 뿐이었다. 이를 계획할 당시엔 많은 비용이 드는 식상한 아이디어라는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최고 높이 135m, 지름 122m에 이르는 거대한 건축물이 연간 135만 명을 불러 모으는 대성공을 가져왔다. 2000년 서울의 랜드마크로 거대한 원형 전망대 ‘서울링’이 계획됐을 때 비용 문제 등으로 무산된 것과는 대비되는 사례다. 건립 당시 수많은 반대에 부닥쳤던 파리의 ‘에펠탑’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저자는 도시의 이미지를 마케팅할 수 있는 건축물의 성공에는 크기가 일정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근 인기를 얻는 공간 디자인은 ‘기억’. 보스턴의 유명 항구였던 ‘퀸즈’ 지역, 중세 동화 속 배경을 재현한 프랑스의 상업 지구인 ‘라 벨레’ 지역, 과거 코카콜라 CF에 나오던 장면들을 재현한 미국 코카콜라 매장 등이 인기를 얻는 것은 기억을 통해 공간과 방문자를 동일시하게 만드는 특별한 힘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선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이러한 ‘기억’ 아이템으로 근대에 대한 기억을 꼽는다. 우리에게 선진 문물을 전해 준 서양 선교사의 집이나 식민 수탈 장소의 상징 건물 등은 그동안 빛을 받지 못했으나 저자는 이런 건물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억’을 통한 도시 마케팅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사실 ‘공간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은 아주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찾아낸 성공 사례를 통해 우리의 공간 활용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다른 해법을 제시하는 저자의 참신한 시각은 되새겨볼 만하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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