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헨델 오페라 ‘리날도’ 연출 피에르 루이지 피치 씨

  • 입력 2007년 5월 2일 03시 00분


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한 오페라 연출계의 거장 피에르 루이지 피치 씨. 안철민  기자
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한 오페라 연출계의 거장 피에르 루이지 피치 씨. 안철민 기자
《“극장은 배우러 가는 곳이 아닙니다. 꿈을 꾸러 가는 곳이지요. 그래서 저는 사실적 연출을 싫어합니다. 오페라는 상상을 불러일으켜 삶을 풍부하게 하고, 꿈을 꾸게 해야 합니다.” 대형 성악가와 지휘자의 시대를 거쳐 온 오페라계는 이제 ‘연출가의 시대’로 불린다. 50년 전에는 존재조차 없던 오페라 연출에 영화감독과 연극 연출가들이 뛰어들고 있다. 그들은 낡은 오페라에 현대적인 미감과 전위적 스타일을 입혀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키고 있다. 그 중심에 탁월한 색감과 공간 분할로 혁명적 무대를 선보여 온 이탈리아의 건축가 출신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77) 씨가 있다. 그는 “제 작품에는 음악과 미술을 비롯한 모든 예술적 요소가 녹아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아이러니(반어)’”라며 “극단적인 두 상황을 아주 간결하게 표현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 ‘연출가의 시대’ 이끄는 거장

피치 씨는 지금까지 이탈리아 라 스칼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스페인 마드리드 극장에서 500여 편의 오페라를 연출했다. 정명훈 씨가 지휘한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의 개관 기념작 ‘살로메’와 ‘트로이 사람들’을 연출한 이도 그였다. 독특한 색감과 파격적인 무용, 연극적 해석이 돋보이는 그의 오페라는 DVD로도 만들어져 세계적인 컬렉션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가 한국오페라단(단장 박기현)과 함께 3년간 국내에서 ‘피치 페스티벌’을 연다. 5월 12∼17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를 필두로 가을에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내년에는 마스네의 ‘타이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팔순에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정력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흰 쌀밥과 야채 한 접시로 점심을 때우며 소식(小食)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에게 왜 하필 다소 생소한 바로크 오페라인 ‘리날도’를 첫 작품으로 선택했는지 물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저는 ‘라 트라비아타’를 5가지 버전으로 연출해 봤어요. 자칫하면 베르디나 푸치니의 유명한 몇몇 작품만 보며 인생을 다 보내게 될지도 몰라요. 한국인들은 상상력이 풍부한 만큼 ‘리날도’도 분명 좋아하리라고 믿습니다.”

○ 유럽 바로크 오페라 연출의 흐름을 바꿔

영화 ‘파리넬리’에 삽입된 아리아 ‘울게 하소서’로 유명한 ‘리날도’는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바로크 오페라. 1711년 헨델이 영국에서 초연해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십자군 리날도가 사라센 영웅과의 결투에서 승리해 예루살렘을 해방시키고 그의 연인 알미네라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2005년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에서 피치 씨가 연출했던 프로덕션이다. 이 작품은 화려한 무대와 동적인 움직임으로 “유럽에서 바로크 오페라 연출의 흐름을 바꿨다”는 평을 들었다. 등장인물은 르네상스 시대 영웅의 조각상처럼 말이나 배, 동상의 기단 위에 올라서 노래한다. 바퀴를 이용해 주인공을 움직이거나 거대한 망토를 펄럭이게 하는 것은 보조 출연자들의 몫이다. 그는 “신화에 바탕을 둔 바로크 오페라의 화려함과 과장, 유머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피치 씨는 지난해 이 프로젝트를 위해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그는 경복궁이나 인사동을 구경하며 단청과 청자색, 먹물 빛에 흠뻑 빠졌다. 그는 “인사동에서 개량한복 3벌을 사서 이탈리아에서 줄곧 입고 다녔는데 모두 부러워했다”며 “한국의 독특한 색감을 오페라 무대에서 꼭 활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3만∼33만 원. 02-587-1950∼2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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