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TV에서 원양어선 선원들의 생활을 찍은 내용을 봤다. 특히 그 원양어선의 어부들은 주로 철갑상어를 잡아 상어 알을 그대로 진공 포장하는 작업을 끝없이 이어가고 있었다. 그 어부들 중에는 흑인도 있었고 바닷바람에 손이 몹시 거칠어진 사람도 있었다. 어디선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바다에서 파도와 싸우면서 거친 일을 묵묵히 해 나가고 있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몹시 고달픈 노동 현장이었다. 노동자를 위한 편의시설은 고사하고 그들을 위로할 어떠한 즐거움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서 포장된 상어 알은 캐비아라는 이름으로 고급 요리의 반열에 들게 된다. 일류 호텔의 주방으로 들어가 은쟁반에 담기고, 철갑상어를 잡던 거친 손이 아니라 비단결 같은 손들이 은쟁반을 넘나들면서 최고의 향락 속에 접시는 비워졌다.
나는 처음과 끝의 너무나 다른, 거친 바다와 호화로운 식당이 교차하는 장면을 보면서 삶의 이율배반을 마음속 깊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은쟁반 위의 캐비아를 먹는 사람이 상어를 잡은 거친 손을 생각해 낼 리가 없고, 파도에 몸을 맡기고 상어를 잡는 거친 손 역시 은쟁반의 일들을 생각할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일은 서로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임에는 분명하다.
우리는 은쟁반 위의 캐비아를 아무런 생각 없이 탐욕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각자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려 한다면 우리의 삶이 너무나 메마르고 어질지 못하다. 은쟁반 위의 캐비아를 즐길 때 우리는 거친 바다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뱃사람들의 힘든 삶을, 기름진 쌀밥을 입에 담으며 농부들의 한여름 구슬땀을 생각해야만 한다. 이것이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 지성의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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