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재산목록 1호
젊어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틈날 때마다 헌책방에 들러 책을 구입했다. 교통비마저 털어 넣어 ‘희귀본’을 구입했을 때는 먼 길을 걸어오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다. 어쩌다 저자 친필 서명본을 손에 넣게 됐을 때는 마치 저자를 직접 대한 듯 기뻤다. 가난했지만 벽돌에 널빤지를 얹거나 조립식 철제 서가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부자라고 생각했다.
수시로 이사를 다니면서도 어떻게든 책만은 챙겼다. 나로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목록 1호였다. 사회과학도였지만 세상을 바꾸는 책보다는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책을 많이 읽었다. 명절이면 한복으로 갈아입고 시조집을 낭랑하게 읽어 내리는 호사를 부리기도 했다. 훗날 내 집을 갖게 되면 제대로 된 서재를 꾸려 안락의자에 앉아 책을 읽겠다는 소망도 품고 있었다.
언론인이 된 후에는 저자나 출판사가 보내 준 책들이 주종이 됐다. 아무래도 내 돈으로 직접 책을 사는 것보다는 애정이 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력이 담긴 책은 저자의 노고를 생각해 서문이라도 읽었다. 저자가 친필 사인을 적어 보내 준 책은 더욱 소중하게 대했다. 내가 기사로 쓴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설 때는 뿌듯한 마음이 들곤 했다. 어쩌다 서가에서 고교나 대학시절 읽은 책을 뒤적이면서 밑줄이 그어진 대목을 읽을 때에는 ‘지금 읽어도 잘 모르겠는데 이 어려운 대목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하며 스스로 대견해하곤 했다. 감수성은 때로 지성을 능가하는 것 같다.
40대에 내 집을 마련하긴 했지만 서재를 꾸미진 못했다. 안방과 베란다에 분산해 책을 나눠 놓으니 책에 대한 애정도 반으로 나뉘는 듯했다. 특히 베란다에 처박힌 헌책들은 잊혀진 여인처럼 내 손길에서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직업적 특성이라고는 하지만 책보다는 신문과 TV 뉴스를 보는 시간이 훨씬 더 늘어났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넓은 집으로 옮겨가 양지바른 쪽에 서재를 만들어 놓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독서로 여생을 보내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50대에 뜻하지 않게 이사를 하면서 이 꿈마저 포기해야 했다. 집을 넓혀서 이사를 갈 형편이 못되다 보니 이삿짐에서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하는 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인생에 두세 번 읽는 책이 몇 권이나 되느냐. 공연히 집착하지 말고 놓아버리라”는 선배의 말씀도 가슴에 와 닿았다.
‘나눔’이 책에 대한 진정한 예의
고민 끝에 전공 관련 도서를 비롯해 절반을 모교 출신학과에 보냈다. “언론인이 되기로 마음먹은 한 젊은이가 30년가량 읽고 간직해 온 책이니 후배들에게 언론에 대한 영감이라도 심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당부와 함께. 책을 모교에 보내면서 오랜 연인과 헤어지듯 말로 다할 수 없는 허전함을 느꼈다. 최근 몇 년 사이 관심을 갖고 모은 수백 권은 평소 잘 아는 선배가 경영하는 출판사로 보냈다. 선배는 수시로 와서 둘러보고, 필요할 때는 언제든 가져가도 좋다고 배려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보낸 책들은 시집간 딸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아직 집과 사무실에 1000여 권의 책이 있다. 주로 내 인생과 글쓰기에 영향을 주신 분들의 저서와 친필 사인이 담긴 책들이다. 이 책들과는 정말 헤어지고 싶지 않다. 요즘은 책을 서가에 두기보다는 그 책을 나보다 더 필요로 하는 ‘임자’들을 찾아주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그것이 책에 대한 진정한 예의라고 생각해서다.
오명철 편집국 부국장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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