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8년 日가격파괴왕 미야지 사망

  • 입력 2007년 5월 9일 03시 00분


1994년 3월 일본 도쿄(東京) 시내의 가전제품 소매회사 조난(城南)전기 앞.

동이 트기도 전인 이른 새벽 3000여 명의 시민이 가전제품이 아니라 쌀을 사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 소극(笑劇)의 총감독은 이 회사 사장인 미야지 도시오(宮路年雄).

쌀 흉작으로 쌀값이 급등하자 미야지 사장은 농가에서 직접 쌀을 사들여 시중 가격의 50%만 받고 판매한 것.

이 소식을 들은 일본 식량청은 “허가받지 않은 쌀 판매는 불법이니 당장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미야지 사장은 “정부가 쌀 수급 정책에 실패해서 생긴 일인데 누구를 탓하느냐. 소비자에게 쌀을 싸게 파는 것도 죄냐. 고발할 테면 고발해라”고 맞받았다.

문제의 쌀은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팔렸고 정부 당국의 미야지 사장 처벌 건은 여론의 눈치 때문에 흐지부지됐다.

소비자에게 물건을 싸게 파는 데 방해가 되는 정부 규제에 과격하게 저항하는 미야지 사장의 기행(奇行)은 그에게 ‘가격파괴 왕’ ‘소비자의 십자군’이란 명예로운 별명을 안겨줬다.

실제로 그는 같은 해 12월 한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장한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나는 벌써 66세다. 시간이 별로 없다. 정부의 가격 규제 정책을 바꿀 수만 있다면 나 자신을 희생해도 괜찮다. 감옥에 갈 각오가 돼 있다.”

미야지 사장이 1998년 5월 9일 70세의 나이로 숨지자 부음 기사 중에 “정부 규제에 대한 그의 오랜 ‘게릴라전’도 이제야 막을 내렸다”는 내용이 있을 정도였다.

그가 그처럼 가격을 파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늘 가지고 다니는 루이비통 가방에 있었다. 그 가방 안에 항상 들어 있는 3000만 엔의 현금 덕분에 파격적으로 싼값에 물건을 사 올 수 있었다는 것. 그 현금 거래 때문에 2000만 엔을 도둑맞고 150만 엔을 강도당하는 불행을 겪기도 했지만….

한때 일본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미야지 사장의 친소비자 정책 때문에 그의 제품을 산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그의 회사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망하고 말았다.

비록 그의 회사는 간 데 없지만 ‘가격은 파괴되기 위해 존재한다’는 그의 명언은 지금도 세계 유통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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