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잇장처럼 얇게 뜬 회
입에서 눈처럼 ‘사르르’
복어와 관련된 족보(族譜)를 쓴다면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곳이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포복집’(02-566-3396)이다.
이곳은 미식가들 사이에 자연산 활어 참복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맛도 맛이지만 박영란(50) 사장의 복어에 얽힌 가족사가 흥미롭다.
남편 김기성(53) 씨는 복어 도매상을 하고 있고,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부모의 권유로 가업을 잇고 있는 딸 현정(27) 씨는 강포복집의 영등포 본점을 운영한다.
‘복어 가족사’는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국에 복어를 공급하는 라이벌인 ‘남대문 복센터’ 막내아들 김 씨와 ‘영남 복집’ 큰딸 박 씨가 결혼한 것. 당시 복어는 지금처럼 대중적이지 않았다. 도매상은 두 집과 박 씨의 이모가 운영하는 ‘서울 복센터’뿐이었다.
어쨌든 두 집안은 이들의 결혼 뒤 부풀어 오른 복어처럼 호황기를 맞았다. 현재 두 집안과 친척들이 전국 복어 도매물량의 70%를 공급한다. 이들이 운영하는 복 전문점만 26곳에 이른다. 양가에서 처음으로 식당을 낸 박 씨도 ‘삼호복집’ ‘대복집’ ‘서울복집’ 등 8개의 복집을 차례로 운영했다.
○ 주방에서
박 씨의 안내로 까다로운 복어 손질과정을 지켜봤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온도와 시간이다. 복어는 최초 손질 뒤 40분에서 1시간 사이에 먹을 때 가장 맛있다. 신경이 살아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신선하다.
복어에 있는 테트로도톡신은 치명적인 독이기 때문에 세심한 손질이 필요하다. 요리사가 능숙한 솜씨로 복어에서 머리, 뼈, 껍질, 내장을 분리했다. 두 쪽으로 나뉜 회 재료가 계속 꿈틀거렸다. 이어 영하 1∼2도에서 수건에 싸서 숙성시켰다. 살 속에 남아 있는 수분이 빠져야 윤기와 탄력이 좋아진다.
다음은 복어 살을 얇게 뜨는 과정이다. 신경이 살아 있는 복어의 조직은 의외로 단단하고 치밀하다.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간 요리사의 날카로운 칼날이 밀릴 정도다. 한 점 한 점 얇게 썬 복어 회가 둥근 접시에 동그랗게 놓였다. 그릇 바닥의 푸른 무늬가 그대로 비쳤다. 그만큼 얇다. 순간 눈이 내린 것처럼 보였다.
○ 주인장의 말
일가친척 모두 복어와 인연을 맺은 뒤 복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복어가 그만큼 매력적인 것 같다.
복어 회의 맛은 재료와 복을 다루는 솜씨에 의해 좌우된다. 복어 손질을 시작해 2시간이 넘으면 재료를 다루기는 쉽다. 얇게 잘 뜰 수 있어 모양은 더 예쁘지만 탄력이 떨어져 푸석해진다.
○ 주인장과 식객의 대화
▽식객=정말 종잇장처럼 얇은 회가 사르르 넘어갑니다. 남의 입에 들어가는 것이 아까울 정도네요.
▽주인장=손님의 만족해하는 눈동자와 마주칠 때가 가장 뿌듯합니다. 그럴 때마다 복 장사를 허투루 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생겨요.
▽식=복어 살을 화로에 구워 먹는 화로구이도 담백하고 쫄깃합니다.
▽주=화로구이는 우리 집에서 개발한 메뉴예요. 화로에 사용하는 숯도 연기가 나지 않도록 특수하게 만들었지요.
▽식=복어 사랑이 대단합니다.
▽주=복어는 해독 효과가 뛰어나고 피부에도 좋습니다. 복집 종업원들 가운데 피부 미인이 많죠.
▽식=복어와 인연을 맺은 지 30년 만에 ‘최고의 복부인’이 됐네요(웃음).
▽주=복집이 왜 작은지 아세요? 복집에 오는 사람들은 술 깨러 오는 거지, 술 먹으러 오지는 않거든요. 복집으로는 큰돈은 못 만져요. 하지만 다시 태어나도 복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활어 참복 코스 요리 13만 원, 복 지리와 매운탕 2만5000원.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