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1시 죽음 준비 교육 지도자과정 강좌가 열린 서울 중구 정동 성 프란치스코 회관 307호 강의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의 양 발끝이 벌어지기 때문에 발을 끈으로 묶는 겁니다. 한 분씩 앞으로 나와서 시신 역할을 해 주시죠.”
천주교 의정부 교구 소속 이 율리아나 수녀의 수시(시신을 거둘 때 몸이 굳기 전에 수족을 주물러 바르게 펴고 묶는 절차)에 대한 강의가 실습을 통해 이뤄졌다.
좁은 강의실은 수강생 50명이 내뿜는 열기로 가득 찼다. 대부분 50, 60대 중장년층이지만 30대도 눈에 띄었다. 마치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처럼 강의에 열중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회장 홍양희)는 2002년부터 매년 두 차례 이 같은 강좌를 연다. 각 종교와 문화권에서 바라보는 죽음의 정의와 사후의 세계 등 이론적인 내용도 있지만 죽음에 임박한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간호, 유언장을 작성하는 방법, 임종을 준비하는 자세, 시신을 수습하는 방법 등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기법도 가르친다.
수강생 김복순(59·여) 씨는 “사는 데 정신이 팔려 죽을 준비를 하지 못했다”면서 “죽음에 대해 알면 알수록 죽음 또한 삶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줄었고 남은 삶이 한층 귀하게 여겨졌다”고 덧붙였다.
수강생의 사연도 다양했다.
한국에서도 ‘웰다잉’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아직 초보 수준이다. 종교계가 운영하는 일부 중고교가 죽음에 대한 기초적인 교육을 하고 있지만 공교육 과정에서 죽음에 대한 가르침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문화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숫자 4가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 숫자판에서 ‘4’자를 아예 빼는 곳이 있을 정도로 죽음은 금기 중 금기에 속한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개설된 죽음과 임종에 관한 과정이 1970년대에 이미 1000개를 넘었다.
고려대 교육학과 강선보 교수는 “미국 초등학생들은 애완동물이 죽었을 때의 상황을 가정한 토론과 동식물의 생활사 교육 등을 통해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도록 배우고 있다”면서 “한국도 지금까지 금기시해 온 죽음 준비 교육을 공교육의 영역에 포함시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암센터 소장 허대석 교수는 “의료 기술의 획기적인 발달로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들도 기계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는 일이 가능해졌다”면서 “죽음에 대한 환자나 보호자의 인식이 거의 변하지 않아 삶을 정리할 기회도 없이 오랜 기간 고통스럽게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받다 죽음을 맞는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변화된 환경과 기술에 맞춰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이정권 교수는 “죽음을 의료의 실패로 규정하는 데 익숙한 의료계의 문화도 문제”라면서 “이러한 문화는 환자들이 통증 완화치료나 가정치료 등을 택해 차분히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기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잘 죽는 것(웰다잉·welldying)이 잘 사는 것(웰빙·wellbeing)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호스피스협회 회장인 건양대 의대 강영우 교수는 “웰다잉에 대한 준비가 덜 된 환자일수록 임종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에 대한 공포와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힘들게 정복한 산도 언젠가는 내려가야 하는 것처럼 인생 또한 하강하는 것임을 깨달으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평소에 유서를 써 보면 죽음을 잘 맞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유서를 통해 죽음을 앞둔 삶이나 장례 절차에 대해 자연스럽게 논의하면서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는 것. 일부 대기업이 사원 연수프로그램으로 유서 쓰기를 하는 것도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다. 글쓰기가 부담스럽다면 캠코더로 동영상 유서를 제작할 수도 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의 홍 회장은 “앨범에서 자신의 사진을 꺼내 보면서 지난 삶을 정리해 보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대한 훌륭한 준비가 된다”면서 “사진에 비친 자신의 인생을 종이에 높낮이 곡선으로 표시해 본다면 한 편의 자서전을 쓰는 것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 암 환자들의 삶은
암을 선고받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일단 지난 일에 연연하지 말고 최선의 치료를 위해 의료진과 상의해 치료법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암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에만 집착하면 정신적 스트레스로 암 치료에 혼란이 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암의 진행을 더디게 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자신이 병으로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을지병원 정신과 신홍범 교수는 “암 환자의 정신적 문제도 일반인처럼 약물치료나 정신과 상담을 통해 완화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암 환자에게는 식이요법이 중요하다. 일부 환자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정보를 과신하기도 해 문제다. 친척, 친구 등이 검증되지 않아 오히려 환자에게 해가 될 수도 있는 ‘…카더라식’ 정보를 환자에게 알려줘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민간요법과 건강보조식품 등에 매달리는 환자가 실제로 완치된 사례는 찾기 힘들다. 정상적인 식생활을 하더라도 힘든 암 환자에게는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장기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암 환자들은 환자의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있을뿐더러 입증된 치료법을 제시하는 주치의와 상의해 섭생을 하고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암 환자는 항암 치료 과정을 잘 견뎌 내고 세포를 빨리 재생시키기 위해서는 5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등 기본을 잘 지켜야 한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종양학과 라선영 교수는 “암 환자는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계란 생선 우유 등 고단백 식품을 규칙적으로 섭취해야 한다”면서 “환자들은 적당한 운동을 하면서 채소와 과일을 수시로 먹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암에 잘 대처하려면 환자 스스로 몸의 상태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암이라는 사실을 환자에게 잘 알리지 않는 한국의 풍토가 문제다. 환자가 암이 악화된 상황에서 뒤늦게 알게 되면 정신적 충격이 더 클 뿐만 아니라 병에 대한 초기 대처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자신의 병을 모르면 치료법에 대한 풍부하고도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 하지 않아 치료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선진국에서는 나이가 너무 많거나 환자의 개인 특성상 정확한 정보가 오히려 해가 될 만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환자에게 병을 정확하게 이해시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강지인 교수는 “과거에는 생존율에만 집착했지만 요즘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와 함께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면서 “최근 치료 기술이 발달하고 있기 때문에 환자에게 암에 걸린 사실을 알려서 적절히 대처하도록 도와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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