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등장한 전략은 웃음. 기타노 다케시(北野武)는 일본 시골의 퇴색한 극장에서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해 영사기를 돌리다 계속 사고를 치는 어수룩한 영사기사로 등장해 폭소를 자아냈다. 이탈리아의 난니 모레티는 자신의 일곱 살 난 아들에게 아들이 좋아하는 ‘매트릭스’와 자신의 영화의 차이를 은근슬쩍 흘리다 면박당한 이야기를 털어놔 대중적 공감을 끌어냈다.
가장 압권은 브라질 출신 월터 살리스의 ‘칸에서 8944km 떨어진’이란 작품. 중남미의 두 흑인이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가 상영되는 영화관 앞에서 칸에 대한 동문서답을 늘어놓다가 “칸은 버려진 작은 어촌인데 그 마을 촌장은 질이라고 아주 지독한 사람”이라는 말로 객석 전체를 웃음바다로 몰고 갔다. 질은 이 영화를 기획한 칸영화제 질 자코브 집행위원장을 말한다.
그 다음은 추억이다. 허우샤오셴(候孝賢), 장이머우(張藝謀), 천카이거(陳凱歌), 차이밍량(蔡明亮) 등 4명의 중화권 감독은 약속이나 한 듯이 어린 시절 영화가 가져다 준 설렘과 흥분을 아름답게 담아냈다. 이들 영화 속 어린이들은 대낮부터 영화상영을 목 빠지게 기다리다 결국 영화가 상영되는 밤에 졸거나, 영사기 발전기 대신 자전거 바퀴를 열심히 돌리며 영화에 빠져 든다. 가장 뜻밖의 영화는 왕자웨이(王家衛)의 ‘당신에게 이것을 전달하기 위해 9000km를 여행했소’였다. 영화관에서 처음 만난 여인과 짙은 애무를 나눴던 개인적 체험을 토대로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러브신은 그의 그 어떤 영화보다 농염했다.
오늘날 영화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발견된다. 캐나다 출신의 아톰 에고얀은 흑백영화 ‘잔 다르크’가 상영되는 스크린 앞에서 휴대전화 화면으로 다른 영화를 보며 끊임없이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여성을 통해 이미지가 넘쳐 나는 시대에 오히려 영화에 몰입하지 못하는 세태를 풍자했다. 영국의 노장 켄 로치는 멀티플렉스극장에서 비상식적 내용의 영화들을 놓고 고민하던 부자(父子)가 결국 축구장행을 택하는 장면을 통해 과도한 상업화가 영화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유쾌하게 경고했다. 유일한 여성감독인 호주의 제인 캠피언은 남자배우들의 매력에 대한 여성들의 찬사가 흘러나오는 영화관에서 벌레 차림의 여성이 영화관 직원에게 들볶이다가 결국 짓밟히고 마는 ‘레이디 버그’라는 작품을 통해 남성 중심의 영화계를 비판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이겨내는 영화의 힘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2분의 1’에 감동해 텅 빈 객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필름을 쉴 새 없이 돌리는 여성 극장장, 예술영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뚝뚝한 인상이었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난 뒤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는 카우보이는 바로 영화에 매혹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다.
‘그들 각자의 영화에게’는 ‘시네마 천국’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영화제가 펼쳐지는 이곳 칸이 아니라 세계 곳곳 영화 팬의 마음속임을 파노라마 같은 화면을 통해 힘차게 증언하고 있다.
칸=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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