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83년 뉴욕 브루클린교 개통

  • 입력 2007년 5월 24일 02시 58분


“불가능한 일입니다.”

“해보지도 않고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죠.”

모두들 ‘정신 나간 짓’이라고 했다. 도대체 맨해튼 섬 남단에서 이스트 강을 가로질러 브루클린에 이르는 길이 1.8km짜리 다리를 무슨 수로 만든다는 말인가(1800년대라면 근대화된 장비가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건축가인 존 오거스티스 뢰블링은 “가능하다”고 장담했다. 존과 아들 워싱턴 오거스티스 뢰블링은 당시 현수교(懸垂橋·길게 늘어진 케이블이 본체를 구성하는 다리) 공사의 일인자들이었다.

이미 존은 1841년에 꼬인 와이어로프 케이블을 발명해 근대 현수교 건설의 원조로 명성이 자자하던 터였다. 남북전쟁에서 군사토목작업을 담당했던 기술장교 출신인 아들 워싱턴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착공을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뉴욕 주의회의 시공 의뢰를 받아 1869년 마침내 공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예상대로 공정(工程)은 쉽지 않았다. 작업을 총지휘한 존이 공사를 시작하자마자 측량 작업 도중 사고로 사망했다. 또 공사 기간 중에 폭발과 화재 등으로 총 27명의 인부가 목숨을 잃었다.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존의 아들 워싱턴이 교각 설치를 위해 빈번하게 잠수하다 끝내 잠수병에 걸려 불구가 돼 버린 것이다. 온몸이 마비되고 말조차 할 수 없었던 워싱턴은 아내와 둘만의 규칙을 만들어 의사소통을 했다.

그는 브루클린 아파트에서 공사 현장을 지켜보며 아내를 통해 기술자들에게 작업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지시했다. 이 기간이 10년이라고 하니 그의 불같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기존의 철제 케이블에 비해 5배나 강한 강철 케이블을 사용하는 등 토목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브루클린교는 우여곡절 끝에 착공 14년 만인 1883년 5월 24일에 마침내 개통됐다.

다리 총연장 1.8km, 교각과 교각 사이 길이 486m, 다리 폭 25m, 다리 무게는 교각을 빼고 1만4680t, 강철 케이블 무게만도 3272t….

개통하는 날 모인 수천 명의 뉴욕 시민은 이 엄청난 ‘괴물’을 보고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1973년 개통된 국내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가 길이 660m에 다리 폭 12m이니 이보다 훨씬 앞선 90년 전에 만든 브루클린교의 위용이 당시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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