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싸가지 없다’는 게 우리의 공통론이다. 저만 알고 부모건 누구건 배려할 줄을 모르며 무엇이든지 제 구미에 맞게 각색해서 받아들인다. 곤란해지면 ‘나 몰라라’ 하고 뒤돌아선다. 물론 어미 아비 탓이라는 걸 안다. 과보호하고 참고 견디는 것을 가르치지 못했다는 것을 통감한다.
부모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랬겠는가. 하나 둘밖에 없는 아이에게 어릴 때 못 먹은 것을 먹여 주고, 못 입은 것을 입혀 주고, 못 해본 것을 시켜 주고 싶었다. 헐벗고 자란 우리의 당연한 본능이었다. 윤택한 시대를 맞아 이런 본능에 맞춰 경쟁적으로 행진해 왔다.
내게도 딸이 둘 있다. 작은아이가 어떤 기관 홍보실에 취직이 됐다. 제 할 일을 잘하는 것 같은데 때로 싸가지가 없기 짝이 없는 저 애가 과연 위아랫사람을 분별해 가며 직장생활을 잘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홍보실이란 데가 움직이는 화류계더라고 농담한 지가 벌써 3년이 되었다. 그동안 제 나름으로 볶이고 닦이고 무엇인가를 터득했을 터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어느 일요일 아침, 작은아이의 느닷없는 노랫소리에 잠이 깨었다.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이별 고개….’ 이게 웬 뽕짝인가. ‘남행열차’란 노래를 연습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이제 ‘단장의 미아리고개’로 시대를 거슬러 간 것이다.
회식이 끝난 뒤 회사 윗분들이며 거래처 어른들을 모시고 노래방에 가거나 그분들 귀가를 돕는 게 자신의 업무라고 혀를 차더니, 핑클이나 베이비복스 노래로는 버틸 수 없었나 보다.
‘당신∼은 철사 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대체 저 가사가 무슨 뜻인지나 알까. 어색하게 꺾이는 노래에 아마추어 냄새가 묻어나 조금은 신선하다. 아이의 적응이 기특하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하다.소설가 이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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