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장사가 될 것 같지 않은 주택가에 있지만 점심 무렵이면 긴 줄이 늘어선다.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것은 청국장이다. ‘구린’ 냄새가 나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고 고소한 이곳 청국장의 힘이다.
큼지막한 차림표에는 ‘장모님 인’이라는 도장 모양과 함께 ‘무주 구천동에서 생산한 순수한 우리 콩으로 저희 장모님이 직접 담근 재래식 된장과 장모님 손맛으로 정성스러운 식단을 준비했다’고 적혀 있다.
○주인장(진성일 씨·58)의 말
2001년 지금 자리로 옮겨 식당을 준비하는데 장인어른이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해 보라’고 하시더라. 그때 장모님이 끓여 주던 청국장이 퍼뜩 떠올랐다. 무공해 지역에서 재배된 콩과 장모님의 정성, 맛….
남들과는 다른 청국장을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주택가여서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찾을 만큼 맛이 뛰어나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매주 식당 근처에 있는 발효실에서 청국장을 띄운다. 콩을 푹 삶은 뒤 짚을 넣고 밀폐된 공간에서 3박 4일간 띄우면 끈끈한 ‘흰 실(뮤신)’이 무성해진다. 더 오래 두면 냄새는 강해지지만 손님들이 좋아하는 별궁 청국장은 아니다.
청국장을 끓일 때는 들깨 국물을 쓴다. 베주머니에 곱게 빻은 국산 생 들깨를 넣어 짠 국물에 청국장을 끓인다. 들깨를 쓰지 않으면 국물이 걸쭉하고 텁텁해진다. 여기에 표고와 팽이버섯, 호박을 넣고 상에 내기 직전 파와 고추를 얹는다.
○주인장과 식객의 대화
▽식객=자칭 청국장 마니아입니다. 그런데 여기 청국장은 정말 인상적이네요. 구린 냄새가 없으면서 구수하고 짜지 않고….
▽주인장=결론은 청국장이죠. 청국장을 띄우는 것은 3박 4일이 적당합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맛은 내리막입니다. 청국장이 ‘영물’이에요. 웃풍을 막아줘야 하고, 사람이 들락거려도 맛이 달라집니다.
▽식=청국장과 들깨의 궁합도 제대로 맞네요. 우유라도 푼 것처럼 부드럽습니다.
▽주=청국장 팔려고 들깨 쓴다면 남들이 믿겠습니까. 서로의 향을 상쇄시키면서도 부드럽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식=청국장의 콩은 짜거나 텁텁해 가려낼 때가 많은데요.
▽주=보통 맛은 혀로 본다지만 저는 이(齒)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씹는 맛입니다. 국물 맛에 씹는 맛도 있어야죠.
▽식=메뉴판이 인상적입니다.
▽주=함경도 영흥이 고향인데 네 살 때 남쪽으로 내려왔죠. 집사람(김선옥 씨·56)이 전북 무주 출신인데 장모님 닮아 손맛이 좋아요. 그 솜씨 탓에 아이 낳기 하루 전에도 일하면서 고생했죠. 메뉴판은 평생 ‘살붙이’가 되어준 아내와 처가 식구에 대한 고마움, 손님에 대한 다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