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고려대에서 열린 ‘현민 유진오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과 현민의 글 6편을 함께 엮어 ‘현민 사상’을 집대성했다.
제헌국회에서 우리 헌법의 초안을 작성했던 ‘법학자로서의 현민’(심재우), ‘고려대 총장을 지낸 교육자 현민’(박영식), ‘김강사와 T교수로 유명한 소설가 현민’(김인환), ‘신민당 총재를 지낸 정치인 현민’(김중위) 등 여러 분야에서 족적을 남긴 현민의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저자들에 따르면 오늘의 시대를 살면서 묻힌 현민의 철학 중 가장 되짚어 새겨야 할 대목은 ‘역할분담론’. 현민은 일제강점기 독립을 향한 투쟁 방식으로 제기됐던 ‘무력투쟁론’(해외파)과 ‘실력배양론’(국내파)을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각자 현실에 맞게 지도자들이 자기 역할을 감당해 냄으로써 결국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을 닦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는 얼핏 1960, 70년대를 주도한 산업화론자와 1980년대 이후 우리 사회를 주도한 민주화론자들간의 ‘대타협론’을 연상시킨다.
현민의 이 같은 역사관이 새삼 주목을 받는 이유는 한국 근현대사의 평가를 둘러싸고 1980년대 이후 지속돼 온 보-혁 간 이데올로기 대결의 우려 때문이다. 특히 실력배양론과 친일(親日)을 동일시하는 듯한 진보적 사가들의 공세에 현민은 ‘왜 실력 배양이 중요했던가’를 삶으로 웅변하고 있다는 것.
책 출간을 주도한 한국인문사회연구원 홍일식 이사장은 “선생이야말로 평생 쉼 없는 사색의 고투 속에서 끊임없이 ‘미지의 쓸모’를 위해 언제나 ‘예비의 곳간’을 채워 놓고 후대들을 손짓하여 부르신 ‘창조의 거인’”이라고 평가했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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