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209>立不易方

  • 입력 2007년 5월 28일 03시 05분


사람이 일정한 위치에 올라서면 변하는 경우가 많다. 변한 것을 탓하면 변한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변한 것이 아니라 주변이 변하고 환경이 변하고 세상이 변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자신의 생각이 변했다는 것이다. 주변이 변하고 환경이 변하고 세상이 변하여 생각이 변한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사람 자체가 변하는 것이다. 이 변화의 중심은 무엇인가? 사실은 숨겨진 욕망이 드러나서 생각을 지배하고,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는 변한 것이 분명하다. 일정한 위치에 올라서기 전에 그러한 사람들이 주장한 것은 욕망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며, 그들의 주장의 저변에 깔려있는 합리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立不易方(입불역방)’이라는 말이 있다. ‘立’은 ‘서다’라는 뜻이다. 이는 어떤 위치에 올라서는 것이므로, 속세의 말로 하자면 성공했거나 일정한 위치에 올라서는 것을 뜻한다. ‘立身出世’는 ‘몸을 세워 세상에 나아간 것’을 나타내지만 실제로는 성공하고 출세한 것을 말한다. ‘易’은 ‘바꾸다’라는 뜻이다. ‘易地思之(역지사지)’는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다’라는 말이다. ‘地’는 ‘땅, 서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처지’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方’은 ‘사각형, 방향’을 뜻한다. 사각형의 네변은 일정한 방향으로 반듯하게 진행한다. 그리고 서로 직각으로 만난다. 이에 따라 ‘方’에는 ‘바르다, 단정하다’라는 의미가 생겨났다. 이상의 의미를 정리하면 ‘立不易方’은 ‘성공하거나 출세해도 반듯한 방향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된다.

사람이 변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동의하는 변함이 있고, 동의하지 않는 변함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바꾸면 안 되는 것’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 변함이다. 변해도 되는 것과 변해서 안 되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이것은 변한 사람 자신이 이미 안다. 누구에게나 이런 정도의 현명함은 있기 때문이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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