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가 본 진보는
① 투쟁과 파괴에 익숙한 한국형 진보의 한계=장은주 영산대 교수는 사회비평에 기고한 ‘생존의 정치에서 존엄의 정치로’라는 글에서 “새로운 진보개념과 정치의 비전을 가꾸어 내지 못하는” 한국 진보세력의 무력함을 꼬집었다. 그는 진보세력이 무능한 원인으로 “학생운동 수준의 이념적 조야함”과 “분단체제에서 다른 한쪽과의 성급하고도 위험한 연결 시도”를 꼽았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1987년 항쟁처럼 기존 체제의 부정에는 익숙했지만 (이후 시대가 요청한) 능동적 형성이라는 과제에는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② 노무현 정부의 변질-진보성의 상실=김근 서강대 교수는 문학과 사회에 기고한 ‘진보-생존을 위한 전략’이라는 글에서 ‘진보’를 자처한 노무현 정부의 변질이 진보세력의 위축을 불러왔다고 비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이라크 파병 등으로 ‘진보’ 정부가 보여 준 보수적 정책이 진보세력의 혼란과 좌절을 초래했다는 것. 장 교수는 “‘진보’ 정부가 진보세력 전체에 대한 신뢰 상실과 위기를 낳았으며 심지어 힘들게 이룩한 민주주의마저 위기에 빠뜨렸다는 비판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③ 시대정신을 담지 못하는 교조주의적 진보 이데올로기=실천문학은 ‘진보세력은 여전히 진보적인가’라는 특집 코너를 통해 시대와 괴리된 진보 세력을 비판했다. 소설가 김남일 씨는 ‘민족문학작가회의’에 대해 “‘민족’을 ‘문학’보다 우위에 놓는 비교가 여전히 온당하다고 생각지 않는다”며 이데올로기의 진부성을 지적했다.
현 위기의 타개책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지만 이들은 대체로 진보의 참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했다. 김근 교수는 ‘진보가 누린 기득권 유지에 대한 경계’를, 윤해동 성균관대 연구교수는 ‘진보의 올바른 개념 정립’을 핵심으로 꼽았다.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는 “진보세력은 노동자 계급의 처지에 서는 것으로 진보성을 확보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며 시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 한국의 진보세력을 비판하기도 했다.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민중세력의 결집”으로 진보는 다시 요구될 것으로 전망했다.
■ 보수가 본 진보는
① 시대적 조류 외면=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위기의 본질을 오판한 진보 논쟁’을 통해 진보세력이 주장하는 ‘노무현 정부의 변질’은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현재 진보의 위기는 1990년대 초반 위기에 철저하게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고 봤다. 1990년대 사회주의 몰락으로 큰 위기를 맞은 진보세력이 1994년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탄생, 1998년 김대중 정부의 등장을 통해 내부성찰과 변화 없이 생존에 성공했다는 것. 그는 ”반성 없이 운 좋게 생존한 진보세력의 몰락은 당연한 결과”라며 “과거의 행운이 오늘의 독약이 됐다”고 평했다.
② 한미동맹의 균열로 인한 혼란=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는 ‘자주외교통일노선 비판’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균형자론 등 탈미자주 정책이 불러온 한미동맹의 균열을 지적했다. 마땅한 대안 없이 전통 우방국과의 관계 균열을 감수하는 진보 세력에 대해 국민이 위기와 우려를 느낀다는 것.
③ 시대착오적 민족우위론=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 잡지에서 대담을 통해 한국의 진보를 개혁적 사회민주주의와 변혁적 진보진영으로 나눴다. 현 정권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로 대표되는 변혁적 진보진영은 “국제협력노선을 약화하고 국익과 괴리된 대북정책을 폄으로써 혼란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진보세력은 기득권을 위해 비현실적 통일담론으로 헤게모니 장악을 누린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진보세력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신 대표는 “1990년대 초반의 위기가 외부에서 왔다면 현 위기는 내부에서 왔다”며 “‘개혁 대 수구’ ‘전쟁 대 평화’처럼 적당한 포장과 낡은 진보성의 강화는 위기의 심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 교수는 진보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현대사의 흐름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개혁적 사민주의로의 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