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아버지다]<하>아버지가 말하는 아버지

  • 입력 2007년 6월 15일 03시 01분


아버지를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남자로서 강한 유형이며 또 하나는 아버지로서 강한 유형이다. 남자로서 강한 유형은 가족보다 자기를 중시한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가족 안에서도 자기밖에 모른다.

이에 비해 아버지로서 강한 유형은 남자보다는 ‘아버지’ 역할을 더 중시한다. 그러다 보니 가족을 위해 자기를 먼저 희생한다.

‘남자로서 강한 아버지’는 내유외강형이 대부분이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작은 일에 상처받는 경우가 많다. 포용보다는 배척이 강해 남의 말을 귀담아듣기보다 자기 말을 앞세우며 말투도 ‘∼하라’는 명령형을 써 권위적이고 폐쇄적이다.

이와 달리 ‘아버지로서 강한 남자’는 내강외유형이 많다. 때로 지나치게 우유부단하고 유약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 말을 앞세우길 꺼린다. 가족 안에서도 ‘∼하자’라는 청유형 말투다.

‘남자’를 앞세우면 집안엔 명령만 있지 대화가 있을 수 없다. 가정은 계급이 아닌 사랑으로 엮는 공동체임을 다 알면서도 상당수 아버지는 계급이요 권위인 ‘남자’이기를 선호한다. 그러고서는 권위가 상실되었다고 느낄 때면 아버지라는 이름 뒤로 숨어버린다. 이들은 등 굽은 아버지니 우울한 아버지라고 말하며 한 번도 제대로 서 본 적이 없었던 아버지 자리에 서서 아버지의 존재를 외친다. 이는 아버지의 존재를 더 졸렬하게 만든다.

아버지란 어떤 자리인가.

요즘 사람들은 아버지를 ‘돈 버는 기계’ 정도로 생각하지만 실제 아버지라는 존재는 경제적 능력과는 무관한 자리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때인가부터 아버지를 경제, 그러니까 돈벌이의 고저, 다과로 들이대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물론 가장에게 가정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을 간과할 순 없다. 그러나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경제적 계산적 부양 책임에만 너무 짓눌려 가정에서 소외되고 있다. 가정의 기둥이어야 할 아버지가 기둥을 포기하고 방황하며 오히려 집 밖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아버지들의 굽은 등을 펴 주려면 경제 논리가 아닌 아버지의 정신과 역할을 복원시켜야 한다.

아버지는 ‘정신’이다. 집안의 정신을 세우는 사람이다. 이것이 무너지고 있음을 우린 두려워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잘 먹고 잘살자’라는 구호는 나라가 할 일이지 가훈으론 적합하지 않다. ‘정도’ ‘정심’ ‘성실’ ‘화목’ ‘사랑’ 등, 아버지가 만들었을 가훈들은 하나같이 물질적인 욕구와는 전혀 무관했다. 역시 정신이다.

정신을 잃고 물질에 아버지 역할을 두다 보니 대다수 아버지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물욕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훨씬 먹고살기 어려웠을 때도 우리들의 아버지는 자식들 어깨를 도닥거리며 “힘들지? 이 시기만 잘 넘기면 된다”고 힘을 주었다.

사회가 아버지의 정신으로 무장할 때 힘이 솟구치는 법이다. 자 모든 아버지들이여! 힘을 내자.

오동명

글쓴이는…

좋은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자녀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가치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16년간 한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 온 체험과 일상생활 속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담은 책 ‘부모로서 산다는 것’을 출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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