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이나 ‘신의 물방울’을 읽다 보면 맛에 대한 환상적인 묘사에 저절로 침을 꿀꺽 삼키게 된다. 시각적 이미지로 가득 찬 만화를 읽고 있노라면 뭔가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일본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도 마찬가지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이 만화에서 남자 주인공인 천재 지휘자 치아키가 해설하며 연주하는 ‘베토벤 7번 교향곡’, 여주인공 노다메와 치아키가 함께 치며 두근거리는 사랑을 만들어 가는 모차르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등의 장면이 나올 때면 과연 어떤 음악일까 궁금해지게 마련이다.
○ 만화-애니메이션-드라마 동영상과 함께 연주
이 만화는 일본 모모카오카 음대생들의 성장기다. 남의 도시락 까먹기가 특기인 피아노과 2학년생 노다메가 3학년생 치아키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지면서 벌이는 코믹한 소동을 담았다. ‘칸타빌레’(노래하듯이)라는 말처럼 클래식이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고 유쾌하고 발랄하게 그려진다.
지난해 일본 후지TV에서 만든 동명의 드라마는 국내에서도 인터넷을 타고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 도입부에 항상 연주되는 베토벤 7번 교향곡이 휴대전화 벨소리 다운로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가상의 지휘자 ‘치아키’를 내세운 ‘노다메 칸타빌레 앨범’도 발매돼 50만 장 이상 팔렸다.
이러한 ‘노다메’ 열풍은 국내로도 이어졌다. 다음 달 7일 오후 2시 반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칸타빌레 콘서트’가 열리는 것.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동영상과 함께 극 중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회다.
관심사는 주인공인 치아키와 노다메를 누가 맡느냐는 것. 지휘는 올해 9월 프랑스 브장송 콩쿠르 본선에 참가할 예정인 최수열(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지휘과 전문사과정) 씨가 맡았다.
○화제의 주인공 치아키 역엔 최수열 씨
공교롭게도 치아키와 최 씨는 모두 순수 국내파이며 프랑스 지휘콩쿠르에 참가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최 씨는 “치아키처럼 비행공포증이 있어서 유학을 안 간 것은 아니다”라며 “잘생긴 치아키와 비교돼 부담되지만 열정적인 연주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극중 노다메가 유학을 떠나는 프랑스음악원에서 실제 유학 중인 이효주 씨가 피아니스트로 나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또한 한예종 학생들로 구성된 ‘S오케스트라’ 단원들은 2부에서 실제로 ‘S’자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을 예정이며,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를 연주할 때는 만화 속에서처럼 바이올린을 높이 쳐들고 연주하는 장면을 재현할 계획이다.
기획사 측에 따르면 현재 티켓은 2500석 중 2000석이 팔렸다. 대부분 ‘일드’(일본드라마) 마니아로 클래식 공연은 처음인 경우가 80% 이상이라고 한다. 관객 중에는 “노다메가 치아키의 지휘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앉았던 합창석을 달라” “치아키가 주로 앉는 C열 뒤쪽 복도 좌석을 달라”는 등 드라마와 관련한 ‘특별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제 클래식 음악이 고급문화이며, 만화는 저급문화라는 공식은 깨졌다. 만화의 인기에 힘입어 클래식 음악이 연주되는 시대가 왔다. 젊은이들이 비싸서 엄두도 못 내던 초밥과 와인이 어느새 친근하게 다가온 것처럼 말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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