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구술잡기]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

  • 입력 2007년 6월 16일 03시 01분


구술문제는 때로 원망스럽다. 20년도 채 안 살아본 학생들 앞에 인류 문명의 심각한 병폐들을 ‘툭’ 던진다. 사회체제에 대한 반성은 해결책까지 이어진다. 학생들에게는 질문 하나하나가 큰 산맥이다.

길을 잃었다면 지도를 다시 보아야 하듯, 기준을 반성하는 일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새로운 대안도 현대 문명의 모순을 반성하는 데서 시작될 터다. 그러나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대안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론적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것, ‘단 하나의 사례’가 갖는 힘이다.

이 책은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을 철저하게 거부하면서 살아간 한 부부의 이야기이다. 미국 대공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1932년, 니어링 부부는 뉴욕을 버리고 버몬트 산골짝에 들어가 새로운 삶을 경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회가 아닌 내 삶을 바꾸는 방식으로 저항했다. 작은 실천이 큰 화두가 되어가는 과정, 그 20년간의 기록에서 배워 보자.

사람들의 삶의 중심은 먹고 사는 문제에 있다. 산업사회의 도시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과 서비스를 돈과 교환해야 얻을 수 있다. 돈이 생존을 좌우한다. 그러나 돈을 좇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동 덕에 인간의 정신과 육체에는 피곤이 쌓여 간다. 대공황 시기에 월급 받는 직장인들은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대량으로 해고되었다. ‘남에게 기생하지 않는 자립 경제’, 니어링 부부의 첫 번째 원칙이다.

그래서 니어링 부부의 일상은 자급자족하는 노동으로 채워진다. 도시에서 버는 돈은 대부분 식비와 주거비로 지출된다. 먹을 것을 손수 만들고 집을 직접 짓는다면 돈에 매이지 않을 수 있다. 직접 생산한 유기농 야채는 건강을 지켜 주고, 몸을 움직여 노동함으로써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긴다. 직접 지은 돌집에서는 벽에 박힌 돌마다 애정과 추억이 함께한다. 그들을 통해 삶의 소박한 기쁨은 욕망을 다스리는 데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지만 이런 삶은 너무 고되지 않겠는가. 뜻밖에도 니어링 부부의 삶에는 여유가 넘쳐난다. 그들은 하루 4시간만 일하고, 4시간은 여가를 즐겼다. 글 쓰고 음악을 듣고 대화를 하고 책을 읽는다. 1년 중 4개월만 일하고, 한두 달은 여행을 간다. 농사뿐 아니라 꽃도 길러서 뉴욕시민들에게도 나누어 준다. 마을 사람들과 악기를 익혀 음악회를 열고 공동체를 다진다. 이 모두가 삶의 원칙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실천해 가는 의식적인 노력 덕분이다.

“삶은 우리 모두가 몸 바쳐서 벌여 나가는 사업과 같다.” 우리 모두가 그들처럼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좋은 삶인가’를 묻는 일은 결국 나의 몫이다. 보이는 길 밖에도 세상은 있다. 우람해 보이는 현대 문명에도 과감한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은 어떨까.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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