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향-맛에 여운까지 음미해야 酒仙”

  • 입력 2007년 6월 16일 03시 01분


《2005년 서울 성균관대 문과대 김동순 학장은 교수들끼리 ‘술 세미나’를 열자며 이색적인 제안을 했다. 술을 매개로 교수들 간의 단합을 북돋기 위해서였다.

그해 10월 한국 전통주에 일가견이 있는 조동원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가 ‘한국의 음주 문화’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 이어 영문과 주관으로 위스키, 불문과 주관으로 와인 특강이 이어졌다.

올해 4월 열린 이 대학 한문학과 송재소 교수의 중국술 특강은 그 어느 때보다 문과대 교수들의 호응이 뜨거웠다. 술 특강은 삭막했던 문과대 분위기를 단숨에 녹였다.》

본보는 조 명예교수와 송 교수를 비롯해 ‘막걸리’로 유명한 고려대에서 ‘포도주 개론’을 처음 개설한 박원목 고려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 윈저 12년 등 위스키를 직접 만들다가 현재 영남대에서 양조학(釀造學)을 가르치고 있는 이종기 술 박물관 관장, 러시아에서 10년 가까이 유학하며 보드카를 섭렵한 박지배(사학과 강사) 한국외국어대 역사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등 각각의 술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술을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등 유쾌한 술 대담을 나눴다.

○ 술 박사들이 추천한 술

11일 성균관대 명륜당(明倫堂)에 모인 이들은 각자 추천하고 싶은 술을 한 병씩 내놓았다.

중국술의 대가인 송 교수는 ‘라오바이펀주(老白汾酒)’를 소개했다. 펀주는 1952년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제1회 중국 핑주후이(評酒會·주류 콘테스트)에서 ‘중국 명주’로 꼽힌 ‘바이주(白酒·증류주)의 대명사’다.

다음은 와인. 박 교수는 포도 대신 복분자와 머루를 섞어 만든 와인을 가져왔다. 이 술은 그가 올해 2월 자신의 정년퇴임을 기념해 직접 담근 것.

그는 머루에 심장질환과 암을 예방하는 ‘레스페라트롤’이란 물질이 적포도보다 5배나 많고, 복분자 와인의 항산화 효과(노화 예방 효과)도 포도주보다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술은 술일 뿐 약일 수 없다며 하루 2잔 이상 마시지 말 것을 권했다.

박 교수는 “100% 알코올을 마신다면 17cc를 마시는 게 가장 적당한 한 잔”이라고 했다. 이 기준대로라면 알코올 도수가 보통 12%인 와인은 하루 약 300cc를 마시는 게 가장 좋다. 5%인 맥주는 680cc, 20%인 소주는 170cc, 40%인 양주는 85cc가 하루 적정 음주량이다.

박 연구원은 러시아의 대표적 보드카인 ‘러시안 스탠더드’를 소개했다. 그는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이 보드카 제조를 자유화한 뒤 불량 보드카가 넘쳐난다며 역시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전통이 있는 ‘러시안 스탠더드’라고 했다.

이 관장은 의외로 평범한 위스키를 소개했다. ‘윈저 12년.’ 하지만 이 관장에게 이 술은 특별했다. 그는 1981년부터 지난해까지 윈저 딤플 등을 판매하는 ‘디아지오코리아’에서 근무하며 이 술을 직접 제조했다.

한국 술 가운데 조 교수의 선택을 받은 건 찹쌀과 누룩을 원료로 만든 ‘화랑’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주세령(酒稅令)과 1965년 쌀로 술을 만드는 걸 금지하는 양곡정책 등이 시행되면서 전통주의 명맥이 끊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1980년대 이후 경제가 살아나면서 자연스럽게 술 소비도 늘었지만 민속주는 여전히 소주 맥주 위스키 와인 등에 밀려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이 관장은 한국의 전통주를 살리려면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사람들이 포도주에 열광하는 것은 포도주마다 스토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지방 어느 농가에서 생산됐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다릅니다. 사람들은 포도주를 마시며 그 스토리를 즐기죠. 한국 전통주도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 술을 맛있게 즐기는 비결

이 관장은 7단계 음미론(吟味論)을 제시했다.

먼저 눈으로 술의 색(윤택)을 즐긴다. 다음은 술이 자연적으로 내뿜는 휘발성 향을 맡는다. 그리곤 숨을 들이켜며 휘발성 향 속에 숨겨진 묵직한 내면의 향을 맡아야 한다. 이어 혀끝으로 술맛을 느낀다. 다음은 술을 입안 가득 퍼뜨린다. 그리고 목에 넘기며 다시 술맛을 음미한다. 마지막으로 여운을 즐긴다.

박 교수는 분위기에 맞는 술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다음은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중요하다. 떫고 드라이한 와인과 짠 음식은 상극이다. 적포도주를 마실 때는 샐러드드레싱을 피해야 한단다. 마지막으로 술의 온도가 중요하다. 뜨거운 맥주나 샴페인, 차가운 적포도주는 상상할 수 없다.

조 교수는 “술을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도 중요하다”라고 했다. 그는 “옛 어른들은 순배(巡杯·술잔을 차례로 돌림)를 하면서 석 잔은 훈훈하고, 다섯 잔은 기분 좋고, 일곱 잔은 흡족하고, 아홉 잔은 지나치다고 했다”며 “술은 곧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술 문화가 어디 그런가.

이 관장은 “조선시대에는 어렸을 때부터 술 예절을 익혔는데 요즘은 모두 중고교 때 수학여행을 통해 술을 접한다”며 “금연교육이나 성(性)교육은 하면서 왜 술교육은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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