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10월 한국 전통주에 일가견이 있는 조동원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가 ‘한국의 음주 문화’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 이어 영문과 주관으로 위스키, 불문과 주관으로 와인 특강이 이어졌다.
올해 4월 열린 이 대학 한문학과 송재소 교수의 중국술 특강은 그 어느 때보다 문과대 교수들의 호응이 뜨거웠다. 술 특강은 삭막했던 문과대 분위기를 단숨에 녹였다.》
본보는 조 명예교수와 송 교수를 비롯해 ‘막걸리’로 유명한 고려대에서 ‘포도주 개론’을 처음 개설한 박원목 고려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 윈저 12년 등 위스키를 직접 만들다가 현재 영남대에서 양조학(釀造學)을 가르치고 있는 이종기 술 박물관 관장, 러시아에서 10년 가까이 유학하며 보드카를 섭렵한 박지배(사학과 강사) 한국외국어대 역사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등 각각의 술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술을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등 유쾌한 술 대담을 나눴다.
○ 술 박사들이 추천한 술
11일 성균관대 명륜당(明倫堂)에 모인 이들은 각자 추천하고 싶은 술을 한 병씩 내놓았다.
중국술의 대가인 송 교수는 ‘라오바이펀주(老白汾酒)’를 소개했다. 펀주는 1952년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제1회 중국 핑주후이(評酒會·주류 콘테스트)에서 ‘중국 명주’로 꼽힌 ‘바이주(白酒·증류주)의 대명사’다.
다음은 와인. 박 교수는 포도 대신 복분자와 머루를 섞어 만든 와인을 가져왔다. 이 술은 그가 올해 2월 자신의 정년퇴임을 기념해 직접 담근 것.
그는 머루에 심장질환과 암을 예방하는 ‘레스페라트롤’이란 물질이 적포도보다 5배나 많고, 복분자 와인의 항산화 효과(노화 예방 효과)도 포도주보다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술은 술일 뿐 약일 수 없다며 하루 2잔 이상 마시지 말 것을 권했다.
박 교수는 “100% 알코올을 마신다면 17cc를 마시는 게 가장 적당한 한 잔”이라고 했다. 이 기준대로라면 알코올 도수가 보통 12%인 와인은 하루 약 300cc를 마시는 게 가장 좋다. 5%인 맥주는 680cc, 20%인 소주는 170cc, 40%인 양주는 85cc가 하루 적정 음주량이다.
박 연구원은 러시아의 대표적 보드카인 ‘러시안 스탠더드’를 소개했다. 그는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이 보드카 제조를 자유화한 뒤 불량 보드카가 넘쳐난다며 역시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전통이 있는 ‘러시안 스탠더드’라고 했다.
이 관장은 의외로 평범한 위스키를 소개했다. ‘윈저 12년.’ 하지만 이 관장에게 이 술은 특별했다. 그는 1981년부터 지난해까지 윈저 딤플 등을 판매하는 ‘디아지오코리아’에서 근무하며 이 술을 직접 제조했다.
한국 술 가운데 조 교수의 선택을 받은 건 찹쌀과 누룩을 원료로 만든 ‘화랑’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주세령(酒稅令)과 1965년 쌀로 술을 만드는 걸 금지하는 양곡정책 등이 시행되면서 전통주의 명맥이 끊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1980년대 이후 경제가 살아나면서 자연스럽게 술 소비도 늘었지만 민속주는 여전히 소주 맥주 위스키 와인 등에 밀려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이 관장은 한국의 전통주를 살리려면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사람들이 포도주에 열광하는 것은 포도주마다 스토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지방 어느 농가에서 생산됐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다릅니다. 사람들은 포도주를 마시며 그 스토리를 즐기죠. 한국 전통주도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 술을 맛있게 즐기는 비결
이 관장은 7단계 음미론(吟味論)을 제시했다.
먼저 눈으로 술의 색(윤택)을 즐긴다. 다음은 술이 자연적으로 내뿜는 휘발성 향을 맡는다. 그리곤 숨을 들이켜며 휘발성 향 속에 숨겨진 묵직한 내면의 향을 맡아야 한다. 이어 혀끝으로 술맛을 느낀다. 다음은 술을 입안 가득 퍼뜨린다. 그리고 목에 넘기며 다시 술맛을 음미한다. 마지막으로 여운을 즐긴다.
박 교수는 분위기에 맞는 술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다음은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중요하다. 떫고 드라이한 와인과 짠 음식은 상극이다. 적포도주를 마실 때는 샐러드드레싱을 피해야 한단다. 마지막으로 술의 온도가 중요하다. 뜨거운 맥주나 샴페인, 차가운 적포도주는 상상할 수 없다.
조 교수는 “술을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도 중요하다”라고 했다. 그는 “옛 어른들은 순배(巡杯·술잔을 차례로 돌림)를 하면서 석 잔은 훈훈하고, 다섯 잔은 기분 좋고, 일곱 잔은 흡족하고, 아홉 잔은 지나치다고 했다”며 “술은 곧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술 문화가 어디 그런가.
이 관장은 “조선시대에는 어렸을 때부터 술 예절을 익혔는데 요즘은 모두 중고교 때 수학여행을 통해 술을 접한다”며 “금연교육이나 성(性)교육은 하면서 왜 술교육은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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