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거나 새로운 여행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위해 연중 서너 달 국내외로 여행하는 내게 많은 사람들이 부럽다고 이야기하더라. 그럼 나는 “여행은 여행이어야지 일과 연관되면 그때부턴 여행이 아니다”고 대답하지. 하지만 실제 일과 관련된 여행에서도 여행의 즐거움을 못 찾을 리 없지.
누나는 종종 어느 곳에 여행 가면 좋겠느냐고 묻곤 하지. 누나 말고 다른 지인들도 많이 물어보는 말이야. 그때마다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있어. 그건 바로 나에게 묻고 있는 사람들의 여행에 대한 성향이야.
문화유적, 자연경관, 산과 계곡, 바다와 섬 등등 좋아하는 여행지를 구분 짓는 여러 범주가 있지만, 여행에 좋은 바탕이 될 만한 내용은 역시 책에 있는 것 같아. 흔히 여행서라고 하면 실제 여행 정보를 모아놓은 실용서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물론 그런 책들도 필요하지만 그 공간에 대한 배경과 예전부터 이어온 삶의 모습을 짚어 볼 수 있는 인문서들이 여행의 진정한 도우미인 것 같아.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역사가 아닐까. 커다란 역사의 흐름을 짚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만들어진 작은 생활사의 모습들을 들여다본 뒤 여행을 하면 그 여행이 더욱 윤택해지는 것 같아. ‘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1, 2’(청년사)를 읽고 여행을 하면 여행지에서 만나는 옛 장승의 새로운 면모를 이해할 수 있어. 마마(천연두) 귀신을 쫓기 위해 위엄 있는 장수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 말이지.
서울의 궁궐 답사도 건축물의 연혁을 위주로 하는 현장 안내판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지. ‘우리 궁궐 이야기’(청년사)를 읽고 고궁에 가면 궁궐 건축물뿐만 아니라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데 어울려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그렇게 해야 비로소 마음으로 느끼는 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 것이지.
어머니 모시고 4년 전에 함께 갔던 전남 완도의 보길도 있지? 얼마 전, 보길도에 산방을 꾸미고 사는 강제윤 시인의 산문집 ‘숨어 사는 즐거움’(녹두)을 읽었어. 새록새록 보길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이 생각나서 올가을쯤 어머니 모시고 다시 한 번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어.
참, 누나는 바쁜 시간 쪼개 틈틈이 서울의 골목골목 찾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황두진 건축가가 쓴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해냄)를 읽으면 서울의 이곳저곳에 대한 신선한 시선이 흥미롭게 다가올 거 같아.
오래된 일이지만 9년 전,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직장을 때려치우고 좋아하던 여행을 직업으로 삼은 그때. 누나는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 숲’(중앙M&B)을 내게 선물해 줬지. 해박한 지식과 시대에 대한 통찰력으로 세계의 이곳저곳을 살핀 이 책은 나의 여행벽을 더욱 부채질했어. 좋은 책을 선물해 준 누나에게 뒤늦은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일 때문에 모두 바빠서 3년 동안 가지 못한 가족여행, 올해는 꼭 어머니 모시고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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