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읽은 원작, 출연제의 받고 생각했죠… 이건 내 운명

  • 입력 2007년 6월 21일 03시 01분


전영한 기자
전영한 기자
‘검은집’ 공포영화로 첫 원톱 주연 황정민

《약속 장소인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 들어서니 평범한 아저씨 한 명이 앉아 있었다. 티셔츠에 청바지, 화장기 없는 검은 얼굴까지는 봐줄 만했다. 그런데 양말을 벗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보니 참 난감했다.

‘된장 냄새’를 막으려야 막을 수 없는 서른일곱의 배우 황정민. 21일 개봉하는 영화 ‘검은 집’은 그가 연기생활 10여 년 만에 처음 도전하는 공포물이란다. 신비감이 없어도 마치 “황정민만은 봐준다”는 식의 암묵적 동의가 형성됐다고 할까?

황정민과 솔직하게 나눈 ‘맨발 토크’.》

“어휴, 투박하고 촌스러워야 황정민이죠. 그런 피를 타고났는데 노력한다고 바뀌나요? 전 부족한 게 너무 많아요. 집에서는 가장인데 쓰레기 분리수거도 못하고, 동사무소 가서 서류 떼는 것도 낯설고, 그렇다고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너무 완벽한 것보다 면박받고 머리 긁적이면서 사는 게 더 재미있지 않아요?”

―영화 한 편 찍고 개봉을 기다리는 심정은 솔직히 어떤가요.

“진짜로요, 늘 ‘아무렇지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어’ 식으로 생각하고 싶은데 그게 안 돼요. 매번 흥행에 초월한 황정민과 전전긍긍하는 황정민이 머릿속에서 계속 싸워요. 만화 보면 천사와 악마가 서로 싸우듯…. ‘검은 집’은 첫 공포영화라 더해요.”

―갑자기 2년 전 영화제 수상 소감이 생각나는데 이번에도 ‘스태프가 차려놓은 밥상’을 먹기만 했나요.

“늘 그렇죠. 스태프 중에 누구 한 명이라도 삐끗하면 영화가 제대로 나오기 힘들죠. 그래서 전 영화 한 편 한 편 출연할 때마다 행복해요. 열심히 하는 이유는 존재감 때문이에요. 배우는 무대 위나 카메라 앞에 있을 때만이 배우니까요.”

그는 몇 년 전 ‘사이코패스’(선천적 이마엽 이상으로 죄의식이 결여된 사람)를 다룬 기시 유스케의 원작소설을 읽었는데 지난해 이 작품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후 자신에게 출연 제의가 왔다고 한다. 그는 사이코패스 범죄자와 맞서는 “보험회사 직원 ‘전준오’ 역을 맡은 게 운명 같다”고 말했다.

“‘원 톱’ 주연은 처음이에요. 부담됐다면 안 했겠지만 그보다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에요. 다만 관객들이 전준오를 평범한 사람으로 받아들였으면 해요. 영화를 촬영하면서 보험관계자를 만났는데 남편이 자는 동안 눈에 독극물을 넣어서 보험금을 타낸 아내가 있었대요. 이런 일들이 일상이라고 하니 놀랍지 않으세요?”

―그럼 영화의 주제가 ‘사이코패스를 이해하자’가 되는 건가요.

“저는 이 소설이 왜 나왔으며 영화가 하필 2007년에 만들어졌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어요. ‘조승희 사건’만 봐도 그런 사건이 일어나기 전 그 사람은 우리 이웃들과 함께 지냈잖아요. 누구나 그런 사람들의 희생자가 될 수 있으니 사회가 이를 보듬어 안아야죠.”

―혹 황정민 씨에게도 그런 포악함이나 이중성이 있나요.

“그럼요. 전 단체로 밥 먹을 때 음식을 통일해 시켜 먹자고 하면 화가 나요. 또 누가 음식을 던지듯 놓으면 그 자리에서 정확하게 지적해야 직성이 풀려요. 저보다 덩치가 큰 사람이 그럴 때도 있지만 뭐, 죽기밖에 더 하겠어요?

‘너는 내 운명’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사생결단’ 등 연속 흥행을 이어온 그이지만 ‘검은 집’의 흥행 여부는 미지수. ‘스파이더맨3’ 이후 7주째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 영화를 누르고 있는 상황이니. 그러나 그는 “한국 영화라서 외면받는 것이 아니라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며 “열심히 노력하면 안 될 일이 있겠느냐”며 웃는다. 여전히 투박하다.

“이제 저도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네요. 고등학교 때는 마흔만 되면 천하무적 배우가 될 것 같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목표를 쉰으로 미룰까 봐요. 다만 배우는 편법이나 권모술수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어요. 거짓 없이 솔직하게 연기해야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전 현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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