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이 순간!]집 읽은 개…‘나’를 잃은 감독

  • 입력 2007년 6월 21일 03시 01분


전수일 감독의 시간 3부작 완결편인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사진 제공 스폰지
전수일 감독의 시간 3부작 완결편인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사진 제공 스폰지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은 요즘 유행하는 ‘같기도’식 표현으로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니여”에 해당하는 시간을 뜻하는 프랑스식 표현이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 저 멀리 보이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가물가물한 시간이란 뜻이다.

‘내 안에 우는 바람’(1997년)과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1999년)에 이은 전수일 감독의 시간 3부작이라는 이 영화 속에선 그런 설명이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감독 김(안길강)은 영화제작비 때문에 진 빚의 독촉에 시달리다 25년 전에 떠나온 고향 속초로 현실도피성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잃어버린 여동생을 찾아 헤매는 묘령의 여자 영화(김선재)를 만난다. 알 수 없는 열정으로 그녀를 따라 강원도 곳곳을 돌아다니는 김은 흘러가는 시간을 붙들려는 영화라는 예술장르에 빠져 있는 감독의 자화상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은 하룻밤을 보낸 영화와 헤어진 김이 폐광촌에서 발견하는 집 잃은 개의 비루한 모습이다. 김은 그 순간 자기 정체성의 출발점을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속초 주민들을 붙잡고 “제가 어디에 살았는지 아세요”를 외쳐 묻기 시작한다. 이는 속초가 개인적 공간인 동시에 실향민들의 고향이라는 사회적 공간으로 오버랩되는 결정적 장면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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