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용우]베니스 비엔날레 ‘비빔밥 미학’

  • 입력 2007년 6월 23일 03시 01분


꼭 의도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의 모든 비엔날레가 언제나 내거는 공통적인 정치적 미학적 슬로건이 있다.

비엔날레는 그저 미술 부문에만 제한된 행사가 아니라 글로벌 문화를 다양하게 경험하고 소비하는 담론의 장이라는 사실, 소수의 전문가를 위한 미학적 담합 장소가 아니라 관객을 위한 축제라는 점, 정치적 불평등을 떠나서 서로가 서로의 자주성과 정체성을 존중하는 건강한 문화 행동의 장이라는 사실, 마지막으로 제도권 미술 단체가 벌이는 관습적 전시 패턴과 다른 시각에서 예술을 보여 주는 장소라는 점이다.

최근 개막한 2007 베니스 비엔날레도 이런 의도를 갖고 ‘관객의 시대’를 알리는 전시와 행사를 기획했다. 그 결과로 얻어진 주제는 이렇다. “감성으로 사고하고 이성으로 느껴라(think with senses, feel with mind).”

요소요소를 찬찬히 뜯어보며 전시 주제의 적합성을 따져 봤다.

예술감독 로버트 스토(예일대 미술대학장)는 중앙관 전시에서 난해한 설치미술이나 하이테크 예술을 지양하고 많은 이에게 이미 잘 알려진 서구 거장의 회화와 조각을 내놓았다.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소통을 시도할 수 있는 비엔날레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베니스 비엔날레 제1기획전시장인 중앙관에서 회화와 조각 중심의 전시가 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변화의 결과가 성공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비엔날레가 기존 제도권 미술관 전시와 왜,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 주는 데 실패한 것이다. ‘관객을 위한다’는 목적 때문에 비엔날레가 가져야 할 본질적 실험성, 전위성, 창작의 자유를 유보(留保)한 결과다.

하지만 제2전시장이라고 볼 수 있는 아르제날레관에서는 실험적인 혼합 전시를 볼 수 있다. 스토 감독은 이곳에서 설치미술을 비롯해 비디오, 사진, 디지털 애니메이션 등 다채로운 표현 양식의 작품을 다수 선보였다.

처음으로 ‘아프리카관’이 등장한 것도 주목된다. 국제시장에서 소외된 아프리카 현대 미술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아프리카의 사진작가 말리크 시디베가 이번 비엔날레 수상자 가운데 한 명으로 결정됐다는 소식이 분위기를 한껏 북돋웠다.

물론 이 바람직한 정치적 시도에도 아쉬움은 있다. 아프리카 전체를 마치 하나의 국가처럼 몰아넣은 전시 기획 때문에 아프리카 각 나라의 고유한 정체성을 무시했다는 비판이 쏟아진 것이다.

국가별 커미셔너가 기획한 76개 국가관의 사정은 솔직히 혼란스럽다. 비엔날레 주제와 부합하는 사례가 많지 않고, 대부분은 ‘나 홀로 전시’에 그쳤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없는, 미학적 비빔밥 같은 비엔날레라는 생각도 들었다. 통제의 한계가 있는 자국관 시스템을 가진 베니스 비엔날레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비엔날레와 별도로 도시 곳곳에서 열린 30여 개의 특별전은 비엔날레 축제의 질을 높이고 규모를 키우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각 나라 미술 재단이나 민간기구가 마련한 작은 독립 전시가 그 질적 수준에서 오히려 비엔날레를 압도하는 경우도 적잖이 찾아볼 수 있어 흥미롭다.

다양한 문제 제기와 논쟁이 있지만, 2007년 6월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베니스 비엔날레, 바젤 아트 페어, 카셀 도쿠멘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등 유럽의 ‘커다란 미술여행(Grand Art Tour)’ 시리즈는 예술에 대한 관객의 호기심과 적극적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커다란 계기가 됐다.

관광산업과 비엔날레가 선의의 결탁을 함으로써 얻어낸 효과라 하겠다. 비엔날레를 다수 개최하는 한국이 잘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이용우 미술평론가·2004 광주 비엔날레 예술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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