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먼퉁퉁콰이콰이더완이창바∼(我們痛痛快快地玩一場파).”
25일 오후 8시, 중국 장쑤(江蘇) 성의 성도인 난징(南京)의 신청스(新城市) 광장. 대형 쇼핑몰 앞 광장에 마련된 야외 가설무대에 주츠런(主持人·꼭두쇠)이 너스레를 떨며 “한바탕 통쾌하게 놀아봅시다∼”라는 말로 광장극(廣場劇·마당놀이)을 시작했다.
오나라의 도읍지였던 이곳 난징에서 한국 마당놀이 ‘삼국지’를 중국의 대표적인 종합예술단체인 장쑤성연예집단이 ‘라이선스’ 형태로 공연한 것. 장쑤성연예집단은 9개 공연단체가 속해 있는 단체로 삼국지의 본고장에 한국의 삼국지가 역수출된 셈이다. ‘마당놀이’를 해외 극단이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공연에서 제1장(場)이었던 ‘도원결의’는 난징 공연에서는 빠지고 그 대신 오나라의 첫 군주였던 손견이 옥새를 얻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삼국지’의 원작자로 이번 공연을 각색한 작가 배삼식 씨는 “중국 측의 요청에 따라 대본을 오나라 시각에서 일부 재구성했다”고 말했다. 공연 제목도 ‘삼국지’가 아닌 ‘삼국지·오(吳)’다.
중국의 ‘3대 가마솥’으로 꼽힌다는 난징의 날씨는 밤에도 후텁지근했지만 이날 광장에 모인 2000명이 넘는 관객은 연방 부채질을 하면서도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의자에 앉지 못해 서서 보는 관객들은 좀 더 시야가 좋은 곳을 차지하기 위해 자리다툼을 벌이기도 했고 지나가던 택시 운전사도 차에서 내려 광장극을 구경했다. 이날 공연장에선 난징일보와 난징TV 등 장쑤 성의 언론뿐만 아니라 런민일보 등 베이징에서 온 중국 취재진도 눈에 띄었다.
관객들은 조조와 손권이 ‘핫라인’ 전화기로 통화하고, 배우들이 비디오의 ‘되감기’ 기능처럼 했던 행동을 거꾸로 다시 하는 등 옛이야기를 현대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등장할 때마다 어김없이 폭소를 터뜨렸다.
한국 공연에서는 마당놀이 전용 가설극장에서 배우들이 관객에게 둘러싸여 질펀한 놀이마당을 펼쳤지만 이곳에서는 마당놀이용 극장이 없어 가설무대 위에서 공연했다. 하지만 배우들은 중간 중간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과의 경계를 허물었다. 특히 제갈공명이 공연 도중 내려와 앞줄에 앉은 관객에게 악수를 청하자 뒤쪽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악수를 하러 달려 나오기도 했다.
다섯 살 난 딸을 데리고 공연을 보러 온 주부 리훙(李鴻·33) 씨는 “삼국지를 재미있는 현대극으로 만들어 요즘 아이들이 옛날이야기를 쉽게 이해하고 볼 수 있도록 만든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극 중간에 등장하는 우리의 ‘뱃놀이’ 노래는 여기에 해당하는 지역 민요인 선요(船謠)로 바뀌었고 ‘올챙이송’ 역시 중국인들이 다 아는 장쑤 성의 동요로 대체됐다.
한국에서의 마당놀이는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이 묘미였지만 이번 난징 공연에서는 ‘이라크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파병 찬성’ ‘파병 반대’ 등 일부 장면을 빼고는 특별한 정치 사회적 이슈는 없었다.
‘삼국지·오’를 제작한 장쑤성연예집단유한공사의 장사오쉐(張少雪) 사장은 “중국에서는 퍼레이드나 춤 또는 노래만 부르는 거리극은 있지만 이런 식으로 배우가 관객과 교감하면서 연기와 춤, 노래를 함께 펼쳐 보이는 공연은 처음”이라며 “앞으로 ‘삼국지·촉’ ‘삼국지·위’도 만들어 중국 곳곳에서 공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삼국지·오’의 총연출을 맡은 손진책 미추 대표는 “이런 마당놀이 양식을 한 번도 접해 보지 않은 중국 배우들이 관객들과 호흡하며 자유롭게 ‘놀게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았으나 우리의 마당놀이를 해외로 수출했다는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난징=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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