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다.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스텝바이 스텝’에 맞춰 몸을 흔든(?) 기억이 있다. 룰라는 물론 DJ DOC의 ‘여름 이야기’도 마스터했던 시절이 있다.
포즈댄스시어터 선생님들의 권유대로 기초반에 등록하긴 했지만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초급반보다 한 수 아래로 ‘몸치’들만 모인 곳이 기초반이기 때문이다.
“저 반은 고급반인가요?”
음악에 맞춰 쓰러졌다가 눈 깜짝할 사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한 바퀴 핑그르르 도는 무리가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초급반이었다. 군말 없이 선생님을 따라 기초반으로 향했다. 대개 기초반에서 3, 4개월 몸을 풀어 준 뒤 초급반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 2주차-뻣뻣하다는 것
TV에서 핑클 멤버 이진이 ‘뻣뻣 웨이브’를 선보일 때마다 크게 웃었다. “댄스 가수가 뭐 저래. 조금만 연습하면 되는 거 아니야?”
첫 수업을 듣고 난 뒤 춤이라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절감했다. 앞이 캄캄했다. 남들 오른쪽 갈 때 왼쪽 가고, 스텝이 꼬여서 허둥대는 사람이 정말 나란 말인가. 기초반도 절대 쉽지 않았다. 단지 비슷한 사람이 있어 위안이 될 뿐이다. 신기한 것은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무릎이 잘 굽혀지지 않는다. 동작에 따라 상체와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 해야 하는데 말 그대로 뻣뻣하다. ‘관절에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엉뚱한 걱정까지 했다. 게다가 동작이 외워지지 않는다. 관절뿐 아니라 뇌까지 노화가 진행된 걸까. 같은 기초반인데도 옆 사람들은 왜 이리 금방 배우는 걸까. 바쁜 시간을 쪼개 여기까지 왔는데 열등생임을 자학하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거울 보기가 너무 싫었다.
“처음엔 다 그래요. 빠지지 말고 열심히 나오면 돼요.”
기초반 고아라 선생님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선생님은 먼저 ‘플리에’ 동작을 집에서도 연습하라고 말했다. 발레에서 나온 기본 동작으로 무릎을 굽혔다 펴는 훈련이다.
기초반 수업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처음 40분은 웜 업(warm up). 요가, 스트레칭, 발레 기본 동작으로 굳은 몸을 풀어 준다. 전혀 지루하지 않다. 음악에 맞춰 여러 사람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반은 음악에 맞춰 신나는 동작을 배운다. 음악과 동작은 매주 바뀐다. 월요일에 새 동작을 배우고 수요일과 금요일에 복습하는 식이다.
○ 6주차-거울 속의 나를 보다
한 달 반이 지났다. 일주일에 세 번의 저녁 시간을 고스란히 재즈댄스에 쏟아 부었다.
배운 지 2주쯤 되자 웜 업 시간이 기다려졌다. 마사지보다 몸이 더 풀리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서서 무릎을 펴고 상체를 굽히면 드디어 손가락 끝이 땅에 닿기 시작했다. 끝나면 개운하다. 가장 큰 변화는 거울 속의 나를 찾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처음엔 보기 안쓰러울 정도라 거울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점점 앞 사람 사이로 비치는 내 모습을 찾기 시작하다 나중엔 맨 앞줄에 서게 됐다.
미운 사람도 자꾸 보면 정든다고, 거울 속의 나도 자꾸 보니 예뻐 보였다. ‘연예인도 아닌데 반드시 완벽한 S라인일 필요는 없잖아.’ 이런 생각을 하니 자신감이 생겼다. 군살도 자꾸 보니 귀여웠다.
배에 힘을 주고 똑바로 서 있는 연습을 자주 했다. 똑바로 서는 연습은 생활에서도 이어진다. 의식적으로 배에 힘을 줘 허리와 어깨를 펴는 것이다.
아직 신체 사이즈에 큰 변화가 없는데도 친구들은 달라진 점을 눈치챘다. 눈에 생기가 있어 밝고 당당해 보인다는 것이다. 키가 더 큰 것 같다는 말까지 들었다.
특히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다 보니 그날의 스트레스는 그날 풀린다. 새로운 동작을 익히는 속도도 빨라졌다. 처음에 동작이 외워지지 않은 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몸이 생소해서 그랬던 것이다.
가끔 음악이 신날 때는 ‘오버’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창피할 것 같아서 움츠러든다. 그래서일까. 아직은 동작이 국민체조 같은 게 흠이다.
선생님의 한마디.
“몸이 처음보다 많이 부드러워졌어요. 동작을 따라 하는 데 어려움도 줄어든 것 같고. 이젠 힘을 빼고 음악을 타도록 해 봐요. 자꾸 스트레칭하고 자신감을 키우면 훨씬 좋아질 거예요.”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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