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오정숙 명창 “스승의 소리, 공부할수록 우러러 보여”

  • 입력 2007년 6월 27일 02시 59분


동초제 판소리의 유일한 보유자인 오정숙 명창. 아담한 몸에서 뿜어 나오는 우렁찬 소리가 변치 않는 그는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소리공부를 쉬지 않는다고 했다. 사진 제공 국립극장
동초제 판소리의 유일한 보유자인 오정숙 명창. 아담한 몸에서 뿜어 나오는 우렁찬 소리가 변치 않는 그는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소리공부를 쉬지 않는다고 했다. 사진 제공 국립극장
■ 동초 김연수 탄생 100주년 ‘춘향가’ 완창하는 오정숙 명창

“선생님은 집안에 정승나긴 쉬워도, 명창나긴 어렵다고 하셨어요. 곽(관) 속에 들어갈 때까지 피나게 공부해도 다 못하는 것이 소리 공부지요.”

전북 완주군 운주면 ‘동초각’. 대둔산 자락의 수려한 경치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여름이면 염천의 더위를 사르는 쩌렁쩌렁한 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진다. 스승인 동초 김연수(1907∼1974·사진)가 남긴 동초제 판소리를 잇고 있는 명창 오정숙(73·동초제 ‘춘향가’ 인간문화재)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현장이다.

동초제는 김연수가 동편제의 우람한 소리와 서편제의 아련한 소리를 뽑아 새롭게 만든 소리. 현재 전북의 대표적인 소리로 자리매김했다. 오 명창은 동초 탄생 100주년을 맞아 30일 오후 3시 서울 남산의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제자들과 함께 동초제 ‘춘향가’ 완창을 할 예정이다.

“판소리 완창을 준비할 때마다 선생님을 모시고 산 속에서 백일 공부를 했어요. 선생님은 음이 조금 틀릴 때는 ‘연습 더 하라’고 하셨는데, 가사가 틀리면 천불이 떨어졌지요.”

학구파였던 김연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심수(口傳心授)의 전통 때문에 판소리의 가사가 부정확하고 오자(誤字)가 많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사설의 오자를 바로잡기 위해 한학자에게 자문했고, ‘춘향가’ 염불 대사 확인을 위해 큰스님을 찾았다. 또한 ‘수궁가’ 약성가를 정리할 때는 한의사를 찾아 조언을 들었다. 그는 말년에 판소리 다섯 바탕의 사설과 장단을 책으로 펴내 전체 판소리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59년부터 동초에게 소리를 배웠던 오 명창은 국내 여류 명창 중 유일하게 판소리 다섯 바탕을 완창한 인물. 키 150cm의 작은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포수 같은 소리에 국악계는 그를 ‘작은 거인’이라고 부른다.

“1968년 박동진 선생님께서 판소리 ‘흥보가’를 처음으로 완창하시는 걸 보고 나도 완창을 해 보겠다고 맘먹었어요. 저는 선생님께 동초제만으로 판소리 다섯 바탕을 완창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오 명창은 1972년 국립극장에서 8시간 반에 걸쳐 ‘춘향가’를 완창한 것을 시작으로 1976년까지 해마다 ‘흥보가’ ‘수궁가’ ‘심청가’ ‘적벽가’ 등 다섯 바탕을 완창했다. 1974년 스승이 세상을 떠나던 날에도 그는 국립극장에서 ‘수궁가’를 완창하고 있었다고 한다.

“제가 동초 선생님께 판소리 네 바탕은 완벽하게 배웠습니다. 그러나 ‘적벽가’는 선생님이 동아방송(DBS)에서 완창한 테이프로 공부했습니다. 선생님 장기의 하나인 ‘적벽가’를 생존하셨을 때 배웠더라면 더욱 좋았을 텐데….”

김연수가 1967년부터 동아방송에서 판소리 다섯 바탕 전판을 녹음해 140여 회에 걸쳐 연속 방송한 것은 국악사에 남을 사건이었다. 이 녹음은 신나라레코드가 1차 복원작업을 했으나 음반으로 출시되지는 못했다. 이번 공연에서 고수를 맡은 동초의 아들 김규형 씨는 “이 녹음은 아버님의 목소리로 동초제 판소리 다섯 바탕을 완창한 유일한 자료”라고 말했다.

지금도 스승 이야기만 나오면 눈시울을 붉히는 오 명창은 “남은 꿈이 있다면 선생님의 고향인 전남 고흥군에 동초기념관을 세우는 것”이라며 “나도 죽으면 선생님의 발밑에 묻어 달라고 제자들에게 부탁했다”고 말했다. 2만 원. 02-2280-4115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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