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25일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개막한 ‘비엔나미술사박물관전’을 참관하기 위해 내한했다. ‘비엔나미술사박물관전’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집한 예술품 중 회화 명작 64점을 선보이는 전시로 렘브란트, 루벤스 등 유럽 근대미술의 변천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슈츠 관장은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최초의 예술 후원자인 막시밀리안 1세(1459∼1519)는 예술과 출판을 통해서만 후세가 역사를 알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예술품을 수집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문화유산이 됐다”고 말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예술품 보석 공예품뿐만 아니라 산호 등 희귀하고 진귀한 물품을 체계적으로 수집했다. 슈츠 관장은 타조알과 산호를 재료로 만든 조각과 유사한 작품 사진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는 “한국 전시는 미술사적 관점에서 작품을 서로 비교해 볼 수 있도록 컬렉터별로 구성했다”며 황제 루돌프 2세,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등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대 컬렉터에 얽힌 일화를 상세하게 전했다.
루돌프 2세(1552∼1612)는 우울한 성격으로 에로틱한 그림을 좋아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연애담을 궁정화가에게 주문하기도 했다. 관능적인 여인의 나신이 전면에 드러나는 ‘불카누스의 대장간에 있는 비너스’ 등 그가 수집한 작품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전시에는 또 그의 결함 있는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 초상화도 선보인다.
레오폴트 1세(1640∼1705)는 50여 년간 재위하면서 ‘바로크시대’를 부채질한 주인공. 슈츠 관장은 벨라스케스의 ‘흰 옷의 어린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장차 남편이 될 레오폴트 1세에게 보낸 기록화로 유럽 왕가의 교류 실태를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이 그림도 한국전에서 볼 수 있다.
카를 6세(1685∼1740)는 문화 예술에 대한 남다른 안목으로 청년기부터 회화를 수집했으며 주로 렘브란트 그림을 사 모았다. 비엔나미술사박물관이 렘브란트 걸작을 여러 점 소장한 것도 카를 6세 덕분이다.
마리아 테레지아(1717∼1780)는 군과 행정 개혁을 통해 근대국가의 통합을 주도하는 가운데 유럽에 퍼져 있던 손자들의 초상화를 비엔나로 보내도록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안톤 폰 마론의 초상화를 통해 여제의 단호한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강연에 이어 한국 전시의 감상 포인트를 묻는 질의가 나오자 그는 “예술품은 관찰하는 자신이 느끼는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무엇보다 전시작에 대한 정확한 배경이나 지식을 미리 습득하고 그림을 마주하면 더 좋은 발상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당시 제후들은 예술가 후원을 통해 영향력을 과시했고 이를 의무로 여겼지만, 요즘 공공재단의 작품 수집은 훨씬 더 힘들어졌다”며 박물관(미술관) 운영의 어려움도 내비쳤다.
허엽 기자 heo@donga.com
▼비엔나미술사박물관展…9월 30일까지 덕수궁미술관▼
대공 레오폴트 빌헬름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미술 후원자 중 가장 비중 있는 사람 중 한 명. 그림은 빌헬름(가운데 모자를 쓴 이)이 갤러리에서 초상화를 관찰하는 장면을 담았다. 오른쪽 옆에 있는 이가 이 그림을 그린 궁정화가 테니에르다. 17세기 중반 유럽 갤러리의 풍경과 왕가의 미술품 수집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전한다. 갤러리 벽에는 ‘동생을 살해하는 카인’ 등 이번 한국 전시에 나온 그림도 있어 관객들에겐 ‘숨은 그림 찾기’도 흥미롭다. 아래 두 마리 개는 걸작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경쟁에 대한 암시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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