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함께 문화산책]영화 ‘맨 오브 더 이어’ DVD

  • 입력 2007년 6월 29일 03시 01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정치권을 바라보는 심경, 장마철 날씨처럼 꿉꿉하기 그지없다. 배꼽 잡는 코미디영화, 눈물 나는 멜로영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공포영화를 보며 계절만큼이나 꿀꿀한 현실을 잊는 방법도 있겠다.

그러나 자고로 이열치열이란 말이 있지 않는가. 대통령선거를 둘러싼 정치문제를 정공법으로 다룬 영화를 보며 화병(火病)을 다스리는 방법을 추천해본다.

최근 DVD로 출시된 미국 영화 ‘맨 오브 더 이어(Man of the Year)’가 그런 작품이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제목에 ‘맨’이 들어간 할리우드 영화라면 질색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분들도 마음 놓으시라. 이 영화는 그런 맨 시리즈와 확연히 차별되는 고품격 정치코미디니까.

스토리는 이렇다. 거침없는 입담으로 화석화한 미국정치를 풍자해 온 정치 코미디쇼 진행자 톰 돕스(로빈 윌리엄스)는 어느 날 방청석 관객으로부터 “당신이 대통령선거에 직접 나서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 말은 인터넷을 타고 미국 전역으로 퍼지면서 800만 통의 지지 e메일로 이어진다. 결국 매니저 잭(크리스토퍼 워큰) 등 자신의 방송제작팀을 선거팀으로 바꿔 무소속으로 출마한 돕스. 거액의 정치자금이 드는 미디어광고를 거부하면서도 17%대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급기야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와 함께 당당히 3자 TV토론회를 펼치게 된다.

기술만능주의를 고발하는 다른 스토리가 하나 더 있다. 그 대통령선거가 하필 최초의 전자투표로 치러지는데 개표시스템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이 뒤늦게 발견된 것. 개발회사는 이를 밝히면 회사의 신뢰도에 치명타가 된다는 이유로 이번 한 번만 덮고 가기로 한다. 아뿔싸, 그런데 그 시스템 오류가 선택한 후보가 하필이면 돕스였던 것.

전 미국이 그 결과에 경악한다. 대부분의 유권자는 돕스의 출마를 정치적 환멸을 표현하는 이벤트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그의 당선 가능성을 믿는 사람은 돕스를 포함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개표결과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치인은 의심할지언정 컴퓨터를 의심할 수 없지 않은가.

아, 의심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시스템 오류를 사전에 발견한 전자개표 시스템 개발회사의 여직원 엘로너(로라 린니)다. 그러나 회사는 그녀의 입을 막기 위해 약물중독자로 만들어놓고 해고한다. 그녀는 자신의 말을 믿어줄 단 한 사람을 찾아간다. 일약 최고권력자 등극을 눈앞에 둔 돕스다.

이 영화의 매력은 ‘위대한 상식(Great Common Sense)’의 힘을 보여 주는 돕스의 긍정적 매력에서 뿜어 나온다. 그것이야말로 미국정치의 부정적 측면을 묘사한 ‘밥 로버츠’, ‘왝 더 도그’, ‘프라이머리 컬러스’와 이 영화의 차이점이다. 돕스는 스스로를 정치상품화함으로써 거대자본의 노예가 되는 대중민주주의 정치의 악순환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누구나 느끼면서도 아무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던 것을 실천한다.

무기회사와 석유회사 같은 거대 이익단체에 부합하는 불안 조성용 안보정책과 면피용 환경정책만 내놓은 정치인에게 민생정치의 실천 요구하기. 러시아에선 몇 센트짜리 연필로 대신하는 우주공간용 필기구 개발에 2800만 달러라는 거금을 쏟아 붇는 재정낭비 추궁하기. 공항 검색대에서 보행기를 쓰는 85세 할머니 붙잡고 몸수색하는 짓이 얼마나 비겁한지 고발하기. 의료보험으로 비아그라는 되는데 안경은 왜 안 되냐고 따져 묻기. 젊은 시절 치기 어린 불장난을 시시콜콜 문제 삼는 흑색선전에 대해 “어린 시절 몰래 여자 나체 사진 숨겨놓고 자위 한번 안 한 놈 있냐”고 맞받아치기…. 돕스가 타는 목마름으로 찾는 것,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상식의 정치이고 책임의 정치다.

‘굿모닝 베트남’과 ‘왝 더 도그’의 배리 레빈슨 감독의 날카로운 풍자정신과 로빈 윌리엄스의 걸쭉한 입담이 어우러진 이 영화가 겨냥한 현실은 고스란히 한국에도 포개진다. 그래서 “공화당에도 질렸어, 민주당에도 질렸어”라며 돕스가 읊조리는 캠페인 송을 개사해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보수냐 진보냐 논쟁에 질렸어, 성장이냐 분배냐 논쟁에 질렸어, 중요한 것은 변화. 우리 삶을 정말 바꿔줄 수 있는 변화야.”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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