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문명과 몸을 섞으면서 이물감을 겪어 내야 하는 현대인. 이원(39·사진) 씨의 DNA는 그대로다. 그는 시집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에서 디지털 공간 속 존재의 의미를 탐색해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현대시작품상, 현대시학작품상 등 수상도 잇따랐다.
6년 만의 새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문학과 지성사)에도 그런 전자기술의 상징이 가득하다. 마우스, 옥션 경매, 휴대전화, 모니터, 플러그…. 그러나 시는 좀 더 깊어졌다. 그는 전처럼 디지털 풍경을 그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헤아려 본다. 가령 ‘아파트에서 1’ 같은 시가 그렇다. ‘한 남자의 두 손이 한 여자의/ 양쪽 어깨를 잡더니 앞뒤로/마구 흔들었다 남자의 손이/여자의 살 속으로 쑥쑥 빠졌다/여자가 제 몸속에 뒤엉켜 있는/철사를 잡아 빼며 울부짖었다/소리소리 질렀다.’
아파트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두 사람. 철근이 박혀 있고 시멘트가 발린 벽 안에서 이 씨가 발견한 것은 가장 인간적인 ‘살’과 ‘소리’다. 마찬가지로 이 씨는 퀵서비스맨이나 폭주족 같은, 기계(오토바이)에 올라탄 사람들에게서 몸이 느끼는 희열을 포착한다. ‘몸 안에 바람의 근육을 달고 질주하는 퀵서비스맨 살을 내어 주고 삶의 시간을 얻는 퀵서비스맨 느닷없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멈춘 퀵서비스맨의 심장이 펄떡거린다.’(‘퀵서비스맨’에서)
그래도 많은 독자에게 인상적인 것은, 이 씨 특유의 차분하고 날카로운 풍자일 것이다. ‘즐거운 인생-창세기’에서 신은 ‘창조’하는 게 아니라 ‘복제’한다. 그때 신이란 ‘현대’의 다른 이름이다. ‘첫째 날/신은 빛과 어둠을 복제했다 빛과 어둠 속에는 신의 소유가 아닌 것들이 수두룩했다 그 순간부터 불법복제물이 성행했다 의외의 사태는 신이 보시기에 좋았다//셋째 날 신은 짐승을 복제했다 전지전능했으므로 기분 나는 대로 복제해 천지간에 던졌다//넷째 날 무허가 신들도 짐승을 복제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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